상해여행을 어떻게 할까.? 상해여행의 루트는 어떻게 짤까.?
여러가지 방법과 루트가 있겠지만, 상해의 역사를 통해서 본다면 상해여행의 그림을 보다 분명하게 그릴 수 있습니다.
상해의 역사에 있어서 중요한 역사적 전환점은 뭐니뭐니해도 1842년 난징조약입니다. 어떤 중국의 역사학자는 난징조약을 중국역사에 있어서 전근대와 근대로 나누는 기점으로 보기도 합니다.그만큼 아편전쟁과 난징조약은 중국역사, 나아가 상해역사에서 중요한 전환점이 됩니다.
1840년 아편전쟁의 결과로 체결된 난징조약으로 상해는 개항을 합니다. 이를 계기로 상해는 한가한 어촌에서 아시아 최고의 도시로 변모하게 됩니다. 따라서 크게 보면 1842년을 기준으로 그이전의 상해와 그 이후의 상해로 나눌 수 있겠지요.
1842년이전의 상해의 역사가 집약된 곳을 보시려면 예원과 상해노가 등 예원주변을 보시면 됩니다.옛성을 중심으로 문묘,성황묘 등의 유적이 남아 있습니다.중심거리는 상해노가라 할 수 있겠지요.지금은 예원을 중심으로 상가가 형성되어 있어서 골동품,진주,치파오 등 다양한 중국전통제품을 사실 수 있습니다.야경도 멋있습니다.
1842년이후 1949년까지의 상해는 조계지시대라 할 수 있습니다. 1842년 이후 영국,미국,프랑스 등이 중국과 조약을 맺고 각각 상해에 조계지를 설치하게 됩니다. 지금 대략적인 조계지를 살펴보면,
초기의 영국,미국 등의 조계지인 외탄,남경로 일대, 그리고 프랑스조계지인 회해로 일대, 그리고 뒤늦게 형성된 일본조계지인 홍구공원(지금의 노신공원),다윤로 일대가 대표적입니다.
각 조계지역은 각국의 건축양식으로 인해 독특한 문화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해서 지금 현재 각 조계지역은 상해를 대표하는 관광명소로 계속 남아있습니다.
특히 이 조계지시대는 우리나라 독립운동의 역사와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습니다. 먼저 상해의 대한민국임시정부는 프랑스조계지역인 마당로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1919년 대한민국임시정부는 일제의 감시와 통제를 피해 비교적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프랑스조계지역에 거점을 확보하게 됩니다.대한민국임시정부가 왜 프랑스 조계지역인 마당로에 있게 되었는지 그 이유를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그리고 지금의 대한민국이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민주공화제 법통을 잇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의미심장하다고 봅니다. 그리고 1932년 윤봉길 의사의 홍구공원의거는 대한민국독립운동사의 장대한 쾌거이지요. 일제는 1932년 상하이사변을 일으켜 상해를 점령하고 대대적인 전승기념과 천장절 기념식을 홍구공원에서 가집니다.이때 대한민국임시정부의 한인애국단의 단원인 윤봉길 의사는 치밀한 준비와 과감한 행동으로 일제에 대해 준엄한 항거를 합니다.일제는 당연히 일본조계지역인 홍구공원에서 기념식을 하게 되었겠지요.
1949년 모택동의 중국공산당은 마침내 중국전역을 통일하고 중화인민공화국을 수립합니다.매년 10월1일 국경절은 이날을 기념하는 것입니다.중국이 공산주의화됨에 따라 자본주의 최첨단의 국제도시인 상해는 옛날의 명성을 뒤로 하고 쇠퇴의 나날을 걷게 됩니다.
그러다가 1978년 등소평의 개혁개방정책으로 상해는 다시 새롭게 날개를 달게 됩니다. 그 중심에 포동이 있습니다. 포동은 상해 경제, 나아가 중국경제의 상징이며, 아시아제1의 동방명주탑,세계제3의 진마오따샤,국제회의 중심 등등 고층빌딩이 즐비한 북한의 김정일 위원장이 말했듯이 그야말로 천지개벽한 지역입니다.
이상 상해의 역사를 통해서 상해여행의 간략한 그림을 그려 보았습니다.
다시 종합해보면,
1. 상해의 옛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예원,상해노가 일대 2. 영국,미국 등의 조계지인 외탄,난징루 일대 3. 프랑스 조계지인 회해로 일대(신천지포함) 4. 일본 조계지인 홍구공원,다윤로 일대 5. 중국 개혁개방의 상징인 포동일대
이상은 역사를 통해서 본 상해여행의 다섯가지 포인트였습니다.
상해여행을 계획하고 계시는 분께 조그만한 참고가 되었으면 합니다.
즐겁고 재밌는 상해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