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 이야기/♣-건축이야기

초가 삼칸

이종국 2009. 9. 10. 09:31

 초가 삼칸...

우리는 보통 부동산을 사거나 팔 때, 평(坪)이라는 단위를 자주 사용한다.

몇 평이라고 해야 말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나 쉽게 감을 잡는다.

그 동안 학교에서 배운 대로 몇 제곱미터라고 하면 이상하게 쳐다본다.

교육이 잘못된 것일까.

 

언젠가 정부에서는 세계화흐름에 역행한다는 이유로 '평(坪)'이라는 단위와 함께,

고기를 저울에 달 때 자주 사용하던 '근(斤)'이라는 단위를 쓰지 못하도록 한 적이 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여전히 몇 평이라고 해야 그 넓이를 알아듣고, 또 몇 근이라고 해야 고기의 무게를 느끼게 된다.

 

왜 그럴까.

평이라는 단위가 대체 무엇이기에, 이렇게 뿌리가 깊고 질긴 것일까.

 

도량형이 세계적으로 통일되지 않았던 고려시대나 조선시대에는 '평'이나 '근' 뿐만 아니라

길이를 나타낼 때도 '자'라고 하는 단위를 사용하였다.

삼국지에서도 관우는 검붉은 얼굴에 청룡언월도를 자유자재로 휘저으면서 전장을 누비는 구척장신(九尺長身)으로 묘사된다.

 

반대로 작은 사람은 오척단구(五尺短軀)라고 했다.

길이를 나타내는 자(尺)도 시대마다 조금씩 그 길이를 달리했지만, 보통 한 자는 30.303cm다.

그래서 구척장신은 270센티미터 이상의 거구를 말하고, 오척단구는 150cm가 될까 말까 한 작은 사람을 뜻했다.

물론 그렇게 크고 작다는 비유다.

 

아파트 크기를 나타내는 일반적인 단위는 제곱미터(m2)와 평(坪)이다.

제곱미터(m2)는 19세기에 제정된 미터법에 의한 국제적 통일 단위로서

우리나라를 비롯한 대부분의 나라에서 공식단위로 채택하고 있다.

 

미터(meter)법은 지구의 자오선 길이를 기준으로 하였으므로,

이전까지 사용되던 건축에 관련된 전통적 단위와는 매우 다른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전통적인 단위로서 동양의 척(尺, 자: 30.303cm)은 손가락을 펴서 재는 길이를 ,

서양의 1피트(1 foot: 30.48cm)는 한 걸음의 폭을 기원으로 하고 있다.

 

특히 건축에 관련된 분야의 경우에는 건축이 인체와 생활을 담는 용기(用器)로서의 속성 때문에 더욱 그러하였다.

우리가 현재 사용하고 있는 평 단위는 사방 6자(1자: 30.3cm, 6자: 1.818m), 30.3058 m2에 해당되는 크기이다.

 

인체는 키와 양팔 벌린 길이가 동일하므로, 이 크기는 남자 성인이 양팔과 다리를 뻗고 누웠을 때 점유하게 되는 크기와 같게 된다.

이러한 개념으로 볼 때, 가구와 벽체 등의 바닥 점유면적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8평의 거실은 8명이, 5평의 침실은 5명의 성인이 누어있을 수 있는 크기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평이라는 면적 단위는 공간의 크기를 우리의 신체로 가늠하고 느낄 수 있게 해주는 기능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는 전통적으로 건축물의 평면적 크기를 나타내는 단위로서는 칸(또는 간(間))이 있다.

 

이 단위는 4개의 기둥이 이루는 구조적 공간 단위인 사각형 평면 1칸에 근거한다.

1칸의 크기는 대부분 평균 8자x8자(약 2.424mx2.424m) 정도이며.

전통주택의 가구식(架構式) 목구조에서 기둥 위의 보의 길이에 의하여 생겨난 크기이다.

 

이는 우리나라 전통적인 최소 주거 단위공간의 크기로 정의 될 수 있다.

즉 인체의 크기와 실내 동작공간을 고려한 공간크기의 단위는 1칸(5.875㎡: 2.424mx2.424m)이며 약 1.8평에 해당된다.

즉, 초가 삼간(칸)은 5.4평, 사대부 주택 99칸은 178.2평의 규모가 된다.

 

아파트의 규모를 표현하기 위한 단위를 우리의 전통적 단위인 칸 수로 표현하는 방법을 제기해 본다.

즉, '25평형 아파트'를 '14칸'으로, '32평형 아파트'를 '18칸 아파트'로 표현한다면,

우리에게 익숙한 전통적 주거 단위로서, 우리는 주거 크기를 새로운 시각으로 더욱 분명하게 느낄 수 있지 않을까.

 

25평 아파트는 작은 집이 아닌 초가 삼간 3채에 해당되는 크기로 느껴질 수도 있다.

현재, 우리는 어쩌면 주거의 '큰 평수' 지향주의로 흐르지 않는 지 자성해 볼 필요도 있다.

아파트에서 실내공간의 크기를 늘리기 위해 외부를 느낄 수 있는 중간영역 공간인 발코니를 없애고 있다.

공간의 절대 크기만을 지향한다면, 우리는 항상 공간의 면적에 대해 상대적 빈곤감을 느낄 것이다.

이제는 아파트의 평수 뿐 만아니라 공간의 질에 눈을 돌려야할 때라고 생각된다.

 

그런데 한 평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사람이 죽으면 눕혀서 관(棺)에 넣게 되는데, 예전에는 보통 그 길이가 여섯 자를 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좌향을 정하다 보면 어느 방향으로 정해질지 모르기 때문에 길이방향 뿐만 아니라,

가로방향도 여섯 자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사람이 반듯하게 누워서 양팔을 벌리면 그 길이는 사방으로 여섯 자씩이 된다.

가로 세로가 각각 여섯 자인 직사각형의 면적을 내면 3.3058㎡가 된다.

이것을 한 평이라고 한다.

이런 이유로 사람이 죽으면 잘났건 못났건 간에, 땅 한 평에 묻힌다고 한 것이다.

죽어서 땅 한 평에 묻히는 것, 그것이 우리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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