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건축물/♣-Vietnam

파월 맹호부대 상륙작전 당시 퀴(Quy Nhon)

이종국 2011. 4. 12. 17:23

 

 

 

 

 

 

 

[한국군의 제3차 파병]


1965년의 제2차 파병 이후의 베트남 상황은 미국의 강력한 폭격에도 불구하고...

호치민 루트를 이용한 북베트남군의 남파가 계속되면서 남부의 전지역에서 지상전이 가열되고 있었다 .
이에 따라 미국과 남베트남 정부는 한국에 1개 사단규모의 전투부대 파병을 요청해왔다.


당시 미국은 본토의 예비병력과 해외 주둔군의 일부를 베트남전에 투입하였기 때문에 주한 미군 2개사단도 언제 남베트남으로 이동할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이에 박정희대통령은 "국가 안보가 최우선이다"는 확고한 신념속에 미국과 남베트남 정부의 파병요청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었다.

한편, 이동원외무부 장관은 브라운 주한 미 대사와 협상을 통해

  1.파병병력의 상한선은 5만병 이내로 한다.
  2.한국군의 현대화를 지원한다.
  3.북한의 침공시 미국이 즉각 출병할 수 있도록 한,미 방위조약을 개정한다.
  4.파병에 소요되는 경비를 미국이 부담한다.
  5.남베트남에서 사용할 군수품 공급등 한국의 남베트남시장 진출을 보장할 것 등의

조건을 제시하였고 이 요구사항은 1965년5월17일과18일 양일간에 워싱턴에서 개최한 한,미정상회담에서 대부분 타결되었다. 이에따라 정부는 8월13일 국회의 의결을 거쳐 수도사단과 제2해병여단의 파병을 결정하였다.
1965년10월12일 여의도광장에서 박정희대통령의 임석하에 수도사단의 환송식이 열렸으며 그후 수도사단은 11월1일 퀴논(Quy Nhon)에 제2해병여단은 10월9일 캄란(Cam Ranh)에 도착함으로써 제3차 파병이 마무리되었다.

 

[퀴논에 상륙한 맹호 1연대]
[청룡부대 결단식]

파월 맹호부대 상륙작전 당시 퀴논(Quy Nhon)항구

 

 

 

 

 

 

 

 

 

 

 

 

 

 

 

 

 

 

 

 

 

 

 

 

 

 

 

 

 

 

 

 

 

 

 

 

 

 

 

 

 

 

 

 

 

 

 

 

 

 

 

 

 

 

 

 

 

 

 

 

 

 

휴가를 즐기는 미군병사.

 

 

현재의 퀴논(Quy Nhon)도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