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건축물/♣------프랑스

모나코빌(Monaco Ville)-아름다운 소왕국의 수도

이종국 2011. 7. 11. 17:35

 

 

 

 

 

세계에서 두 번째로 작은 나라

모나코 빌(Monaco Ville)-아름다운 소왕국의 수도

 

BC 10세기경 페니키아인이 최초로 모나코 항만에 들어온 뒤, 그리스인·카르타고인·로마인 등이 항구로 이용하였다.

로마 시대에는 무역항으로 번영하기도 했다.

현재는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부드럽고 따뜻한 지중해성 기후로 전세계 많은 관광객을 불러들이고 있다.

 모나코 왕국의 인구는 3만명, 수도인 모나코의 인구는 천오백 명의 작은 도시이다.

 

1793년 프랑스에 합병된 뒤에 1861년 프랑스 보호 밑에 독립했다.

62년부터 국회의 권한을 강화한 신헌법의 제정으로 국왕과 국민회의가 공동으로 입법권을 행사한다.

국내세금의 대부분은 관광·도박·우표판매로 충당해 세금은 없다. 화폐는 프랑스의 프랑화를 사용한다.

 파리로부터 계속 차를 달려 프랑스 최대의 항구도시인 마르세유에 도착하자 지중해의 넓고 시원한 바다가 반긴다.

그곳에서 모나코까지 지중해 연안을 따라 북상하면 지중해 연안으로 이어지는 비취색의 바다에는 수없이 떠 있는 하얀 요트와 배들이 정박해있다,

 

모나코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축구팀인 AS 모나코 FC의 연고지이다.

모나코는 국제축구연맹에는 가입하고 있지 않다.

 

모나코는 비록 국제축구연맹에 가입하지 않았지만, 여러 훌륭한 선수를 배출해 냈다.

대표적인 선수가 바로 공격수 티에리 앙리에마뉘엘 아데바요르, 수비수 파트리스 에브라이다.

대한민국 출생으로는 박주영 선수가 2008~2011 3년 동안 뛴 바가 있었다.

 

그리고 경사면에 자리잡은 아름다운 별장들은 꿈속의 풍경처럼 환상적이고, 아름답다.

영화제로 유명한 칸도 깨끗하고 쾌적한 도시였다.

 좀더 나아가면 니스가 나온다. 니스의 여름바다는 해수욕객으로 초만원을 이룬다.

바다의 여인들이 유방을 드러내며 태연히 일광욕을 하는 모습은 동양인들의 눈에는 낯설기만 하다.

 니스에서 차를 계속 달려 모나코로 향한다.

해안선은 구불구불 굴곡을 이루며 아름다운 파란 바다와 별장들이 지구촌의 부를 상징하듯이 부호들의 낙원처럼 보였다.

우리들과는 거리가 먼 세계, 너무나 부유해 이질감을 느끼게 한다.

 

모나코는 섬처럼 떨어져서 돌출한 반도에 있다.

때문에 삼면이 모두 바다여서 더욱 아름답고 시야가 탁 트인다.

기차로 여행하게 되면 모나코의 몬테카를로역에 내려야 한다.

 자그마하고 초라한 역이어서 처음 내린 사람은 여기가 그 유명한 부자들만이 온다는 휴양지인가 의심이 갈 정도이다.

역에서 언덕길을 조금 내려가면 다메스광장이 나온다.

이 광장에는 이른 아침부터 정오까지 오픈 마켓이 서는 곳이어서 꽃·야채·과일 등 신선한 것을 살 수 있고 비교적 점포에서 사는 것보다는 싼 편이다.

여행객을 비롯해 이곳 주민들이 섞여져서 누가 관광객이고 이곳 주민인지 구분이 안간다.

 

그러나 옷을 말쑥하게 차려입은 노신사나 화려하게 옷을 단장하고 모자를 쓴 할머니는 부유한 관광객으로 보면 틀림없다.

어느 길을 따라서 언덕을 내려가도 그 길은 바다로 나가게 된다.

천혜의 만으로 이루어진 모타코항은 어항이나 상항이 아닌 요트의 항구이다,

수백만 달러나 하는 호화스러운 요트들이 화려함을 자랑하며 수없이 정박해 있고 방파제를 빠져나가거나 들어오고 있다.

 

 

모나코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작은 나라다. 항구를 중심으로 아담한 지중해 도시의 풍경을 만들어낸다.

 

항구 주변은 영화 속에서나 만나던 희귀한 요트들의 세상이다.

세금을 피해 모나코로 이사 온 부호들의 요트가 빼곡하게 정박해 있다.

호화로운 요트만 기웃거려도 흥미롭다. 요트 중에는 웬만한 빌라를 능가하는 수십억 원에 달하는 것도 있다.


항구를 끼고 몬테카를로 지역으로 접어들면 모나코의 그랑카지노다.

파리의 가르니에 오페라를 설계한 샤를 가르니에가 1878년 건축한 곳으로 유서도 깊고 외관도 아름답다.

늘 관광객들로 흥청거리지만 막상 자국민들의 입장은 금지돼 있다.

호사스런 모나코로 놀러 온 부자들의 주머니가 주요 관심대상이다.

입구주변에는 고급 차와 명품숍들이 즐비한데 여행자의 투박한 복장으로는 입장이 좀 어렵다.


모나코는 [미라보 다리]로 유명한 시인 기욤 아폴리네르가 유년시절을 보낸 곳이기도 하다.

해양박물관, 열대 정원, 라흐보도 해변 등이 소소하게 둘러볼 만한 곳이다.

모나코빌에 오른 뒤 해안가만 거닐어도 모나코의 이국적인 정취를 느끼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가는 길
항공편은 없다. 프랑스
니스에서 열차를 타고 가는 게 일반적이다.

니스에서 몬테카를로 역까지는 20분 소요. 가는 길 창밖 지중해 풍경이 꽤 인상적이다.

주요 볼거리는 역을 중심으로 걸어서 둘러볼 수 있다.

왕궁, 카지노, 항구 등을 운행하는 꼬마열차를 이용하면 편리하다.

 

모나코반도의 땅속은 마치 요새화되어 동굴이 뚫려 있는데 모두 주차장이다.

그곳에서 파킹을 하고 위로 나오면 3면에 바다가 보이고 모나코 시내를 한바퀴 도는 관광열차가 손님을 기다린다.

장남감 같은 예쁜 차이다.

 그곳에 있는 해양박물관에는 어린이들의 교육을 위해서 한번 구경할 만한 곳이다.

또한 이 반도에는 시청과 국립박물과, 그리고 그레이스 켈리가 모나코왕과 결혼식을 올렸다는 대성당이 있어 관광객의 발길을 붙들어맨다. 

 

왕궁(Monaco Palace)그러나 옷을 말쑥하게 차려입은 노신사나 화려하게 옷을 단장하고 모자를 쓴 할머니는 부유한 관광객으로 보면 틀림없다.

어느 길을 따라서 언덕을 내려가도 그 길은 바다로 나가게 된다.

천혜의 만으로 이루어진 모타코항은 어항이나 상항이 아닌 요트의 항구이다.

수백만 달러나 하는 호화스러운 요트들이 화려함을 자랑하며 수없이 정박해 있고 방파제를 빠져나가거나 들어오고 있다.

 

 

 

 

 

 

라콩다민(La Condamine)

 

라콩다민(La Condamine)모나코에 있는 10개 행정구 가운데 하나로 면적은 0.2372㎢ 인구는 사천여명이다.

지중해 연안과 접하며 몬테카를로모나코빌 사이에 위치한다.

모나코에서 가장 큰 항만 시설과 상업 지구로 유명하며

모나코에서 가장 큰 항만 시설인 에르퀼레 항(Port Hercules)이 들어서 있다.

 

나라의 크기가 일반 도시만하기 때문에 궁전 역시 화려함과 웅장함과는 거리가 멀어보였다.

일반 시청사 건물 만한 크기에 누런 황색의 건물색과 바람에 펄럭이는

붉은색과 하얀색의 이분법으로 그려진 모나코 국기만이 궁전의 위용을 간략하게나마 드러내고 있었다.

마침 궁전의 작은 뜰에선 근위병 교대식이 열리고 있었다.

정오에 펼쳐지는 근위병 교대식은 비록 작고 초라했지만

절도 있는 근위병의 모습만은 여타 유럽의 근위병들과 다르지 않았다.

 

대공궁전은 모나코의 풍경을 한눈에 볼 수 있을 정도로 전망이 뛰어난 곳이다.

그런면에서 요새로서의 기능만은 충실히 해내고 있었다.

궁전 뒤로 돌출된 기암괴석이 언덕처럼 올라와있는 산맥이 펼쳐져 있고 나머지 삼면은 바다와 접해있다.

항만위로 수많은 돛들이 하늘로 치솟아있다.

 

크고 작은 요트들로 가득한 선착장이 마치 자동차경기장의 레일 마냥 둥근 곡선모양으로

조성되어 있고 언제 출발할지 모를 하얀 요트들은 그 화려한 외관으로 모나코항을 더욱 빛내고 있었다.

항만위로 주황색 지붕의 별 장군이 들어서 있고 그 주변으로 높다란 빌딩들이 숲처럼 시가지를 가득 메우고 있다.

 

푸른 하늘 아래로 하얀 구름이 살며시 걸려있고 그 사이로 높다란 산맥이 병풍처럼 삼면을 둘러싸고 있다.

산맥 아래로 현대적인 도시의 모습을 드러내는 듯

수많은 빌딩 숲이 펼쳐지고 그 아래로 하얀 요트들이 수놓은 항만이 펼쳐진다.

전체적으로 산줄기를 따라 아래로 미끄러지듯이 내려오는 모습이었다.

시선이 향하는 이곳은 높다란 성채로 둘러싸인 요새였다.

 

궁전 앞 광장에는 기념품 가게들이 즐비했다.

매년 5월에 열리는 모나코 그랑프리로 유명한 도시답게 많은

카레이스 관련 물건들이 주를 이루었고 그 틈새로 그레이스켈리의 사진들이 간간이 보였다.

 

흑백 사진 속의 그레이스켈리, 그 단아한 외모와 커다란 눈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금방이라도 빨려들듯했다.

레니에 3세와의 결혼식 장면을 찍은 사진들도 많이 걸려있었다.

그들의 결혼으로 세간에 널이 알려진 만큼 이곳의 주요 관광수단 중의 하나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아름다운 한 쌍의 커플이 탄생하는 순간을 바라보면서도 안타까운 현실은 잠시나마 슬픔을 자아냈다.

1982년 9월 모나코 근교의 여름별장에서 왕궁으로

돌아오던 중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모나코왕비의 비극적인 운명 때문이다.

 

더 이상 아름다운 금발의 미녀도, 우아한 왕비의 모습도 볼 수 없었다.

단지 시간을 정지시킨 사진 몇 장만이 당시의 추억을 간직하고 있을 뿐이었다.

광장 뒤로는 많은 건물들이 아기자기한 모습으로 세워져있다.

그림엽서에서 봄직한 모나코왕가의 문양이 선명히 찍힌 건물들로 가득한 그 거리를 따라 몇 걸음을 옮겼을까.

커다란 선인장들로 가득한 정원이 나타났다.

여러 가지 모양의 조각들로 가득 메워진 공원과 접한

 그곳엔 멀리 지중해의 푸른 물결이 요동치는 모습을 바라 볼 수 있는 전망대가 있다.

 

지중해와 F-1, 요트로 치장된 도시

 

모나코는 세금도, 군대도 없다. 물, 가스 등 생필품과 국정에 대한 일부도 프랑스에 의존한다.

어찌 보면 태평천국이다.

그런 모나코의 주 수입원 역할을 하는 게 F-1 자동차 경주와 카지노다.


매년 5월 열리는 F-1 경기를 위해 항구 일대는 봄부터 단장에 분주하다.

이곳 포뮬러-1 경주는 전용 트랙에서 열리는 게 아니라 일반 도로에서 펼쳐지는 게 특이하다.

바로 코앞이 항구고 지중해다.

별도의 관중석이 마련돼 있지만 빌라 옥상에서 맥주 한잔 즐기며 경주를 관람할 수 있다.

수려한 경관 속에서 폭음의 차들이 거리를 질주하며 대축제를 만들어낸다.

 

주 수입원이 이곳을 찾는 전세계 수 백만명의 관광객들의 호주머니일때니 첫인상은 그만큼 중요할 것이다.

밝은 형광등 조명아래 기나긴 통로를 지나자 뜨거운 지중해의 햇살이 내리쬐기 시작했다.

평균온도 25.5의 온난한 지중해성 기후여서 그런지 그리 무덥지도 습하지도 않은 쾌청한 날씨였다.

 

간이역 관광안내소에서 받은 모나코 시내 지도를 손에 들고 천천히 도시를 둘러보기로 했다.

샌들 아래의 발바닥으로 뜨거운 아스팔트의 기운이 전해졌지만

전후좌우로 고개를 돌려가며 느긋하게 이곳의 경치를 머릿속에 저장해 가는 것도 나쁘진 않았다.

전체면적이 1.95㎢밖에 되지 않은 이 조그만 나라를 교통수단을 이용하며 돌아다니기엔 너무 사치스런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처음 찾아간 곳은 대공 궁전(The Palace of the Prince)이었다.

1191년 제노바의 명문 '그리말디 家'가 프랑스의 원조를 받으며 이곳에 진출하여 집권한 이후

스페인과 프랑스 등 외세의 침입에 항거하며 독립주권국의 생명을 끝까지 버텨냈던 곳이다.

처음엔 길이 800m, 높이 60m의 암석으로 둘러싸인 천혜의 자연환경이

요새의 역할을 해 온던 것을 17세기에 들어서면서부터 궁전을 지어 요새로 사용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선상에는 언제나 바다의 연인이 몸매를 자랑하며 일광욕을 즐기는 모습이 보인다.

모나코에 오면 누구나 한번 쯤은 호기심을 갖는 곳이 카지노이다.

이곳의 유명한 카지노는 르네상스식의 건축양식으로 고전미가 넘쳐흐른다.

이 나라는 카지노와 관광객의 수입만으로 세금을 충당하는 나라이므로 언제나 대환영이며 시민·경찰 모두가 친절하다.

 카지노는 매일 10시부터 개장하지만 무드를 만끽하려면 오후 7시 이후에 들어가는 것이 좋다.

세계의 부호들이 모이는 곳이므로 값비싼 옷을 입고 들어오는 그들에게 우선 압도될 것이다.

가방이나 카메라는 휴대하고 들어갈 수가 없다.

우리와 같은 서민은 이왕 들어왔으니 슬롯 머신이나 몇번 돌려보고 나오는 것이 상책이다.

 

 

 

 

퐁비에유( Fontvieille)

 

퐁비에유( Fontvieille)는 모나코 남서부에 위치한 행정구로 면적은 0.35㎢ 인구는 3,600여명이다.

바다를 개척하며 행성된 도시이다. 

지중해 연안과 접하며 AS 모나코의 홈 구장인 스타드 루이 되,

모나코 국제 대학, 프랑스 니스 코트다쥐르 공항을 연결하는 모나코 헬리콥터 비행장 등이 들어서 있다.

 

 

 

 

 

 

 

 

모나코 왕궁(Monaco Palace)

 

 모나코빌(Monaco Ville)에 있다.

위 지역이 모나코 10개 행정구역중  모나코빌(Monaco Ville)에 해당된다.

 건물은 16~17세기에 지었지만 중세에 세운 탑들도 보존되어 있다.

 

명예궁에는 16~17세기의 벽화가 복원되어 있는데, 리고와 라르질리에르, 고베르, 보나 등이 그린 초상화가 뛰어나다.
궁전박물관과 궁전의 역사자료보관도 들어 있는데, 나폴레옹에 관한 유물 중에서 볼 만한 것들이 많다.

 

옷을 말쑥하게 차려입은 노신사나 화려하게 옷을 단장하고 모자를 쓴 할머니는 부유한 관광객으로 보면 틀림없다.

어느 길을 따라서 언덕을 내려가도 그 길은 바다로 나가게 된다.

천혜의 만으로 이루어진 모타코항은 어항이나 상항이 아닌 요트의 항구이다.

수백만 달러나 하는 호화스러운 요트들이 화려함을 자랑하며 수없이 정박해 있고 방파제를 빠져나가거나 들어오고 있다.

 

모나코반도의 땅속은 마치 요새화되어 동굴이 뚫려 있는데 모두 주차장이다.

그곳에서 파킹을 하고 위로 나오면 3면에 바다가 보이고

모나코 시내를 한바퀴 도는 관광열차가 손님을 기다린다.

장남감 같은 예쁜 차이다.

 그곳에 있는 해양박물관에는 어린이들의 교육을 위해서 한번 구경할 만한 곳이다.

또한 이 반도에는 시청과 국립박물과,

그리고 그레이스 켈리가 모나코왕과 결혼식을 올렸다는 대성당이 있어 관광객의 발길을 붙들어맨다.

 

세기의 결혼식이 치러졌던 모나코 왕궁(Monaco Palace)

그레이스 켈리의 추억이 서린 왕궁


"내 궁전은 혼자 지내기에는 너무 넓어요"

 

당시 모나코 왕자였던 레니에 3세는 12캐럿짜리 다이아몬드 반지를 건네며 그레이스 켈리에게 이렇게 청혼했다.

훈훈한 러브스토리와 수만 명이 몰려든 웨딩마치는 프랑스 한 모퉁이의 소국을 화제 속에 몰아넣었다.

 

결혼식 이후 모나코는 미국 등 전 세계인의 주목을 받는 관광대국으로 급성장했다.

절세의 미녀와 관광수입을 한꺼번에 얻어낸 레니에 3세는 정치가이자 로맨티시스트였던 셈이다.

이 나라의 군주의 칭호는 Prince이다.

이를 '왕자'로 번역하기도 하는데, 이것은 잘못이다.

 원칙적으로는 공(公)으로 번역해야 옳으며, 대공(大公) 또는 공왕으로 번역할 수도 있다.

 

모나코는 2007년대한민국과 수교하였으며, 대한민국 단독 수교국이다.

1988년 하계 올림픽에 참가하였으며 주프랑스 한국대사관이 겸임하고 있다.

북한과는 수교하지 않고 있다.

 

여행자들의 발길은 자연스럽게 모나코 빌로 향한다.

결혼식이 실제로 열렸던 왕궁과 부부가 잠들어 있는 성당이 있는 공간이다.

수도승으로 위장해 모나코를 탈환했던 프랑수아 그리말디(François Grimaldi)의 동상도 들어서 있다.

 

정오쯤 열리는 왕궁 앞 위병 교대식은 모나코의 인기 높은 이벤트 중 하나다.

왕궁에는 지금도 왕이 살고 있다. 밖에서 언뜻 봐도 왕이 혼자 살기에는 너무 넓은 공간이다.

 

절벽 위에 솟은 모나코 빌은 성채 같은 모습이다.

헤라클레스가 지나간 자리에 신전을 세운 곳이 모나코 빌이라는 전설도 내려온다.

오르는 길이 만만치 않지만 내려다보는 풍경만큼은 압권이다.

 

모나코 항구를 기점으로 하얀 요트들과 언덕을 가득 채운 부티크 빌라들이 촘촘히 늘어서 있다.

항구에서 시작된 은빛 물결은 짙푸른 지중해로 이어진다. 성

채 위에는 왕이 살고 그 아랫마을에는 귀족(부호)들이 사는 듯한 낭만적인 구조다.

 

다메스 광장 오른쪽 언덕으로 올라가면 모나코 궁전이 나온다.

이곳에서는 매일 11시 56분경에 위병교체식이 행해진다.

하얀 제복을 입은 멋진 군인의 교대식은 코발트색의 하늘과 바다와 대조를 이루며 시원함을 준다.

 

왕가의 삶은 여인들에게는 색다른 로망을 심어준다.

 

진정한 지중해의 휴양국가지만 그래도 바람 잘 날은 별로 없었다.

세기의 결혼식 후에도 스테파니 공주 등 모나코의 왕가들은 끊임없이 스캔들에 연루되며 화제를 뿌렸다.

 

현재의 왕(알버트 2세)은 독신이지만 아들과 딸이 있으며, 20년 연하의 남아공 여인과 결혼을 준비 중이다.

최근에는 그레이스 켈리의 손자인 안드레아 왕자의 인기가 급상승하고 있다.

신데렐라의 꿈을 실현시켜줄 보랏빛 천국으로도 모나코는 손색이 없다.

 

 

 

성채에서 내려서는 길은 단아하다.

반대쪽의 투박한 절벽과 달리 아기자기한 골목들이 늘어서 있다.

 

지중해풍의 레스토랑과 기념품 가게들도 옹기종기 모여 있다.골목에서는 그레이스 켈리가 새겨진 우표도 판매된다.

모나코에서 부치는 엽서 한 장은 여행자들에게 꽤 인기가 높다.

 

 

 

 

 

 

 

 

 

1956년 어느 유명 여배우가 백마 탄 왕자를 만나 결혼을 하게된다.

다이알 M을 돌려라(Daial M for Murder)... 갈채(Country Girl)등으로 아카데미 연기상을 받으며

당대 최고의 여배우 자리를 굳건히 지키던 할리우드 스타 '그레이스켈리'와 모나코 왕자 '레니에 3세'가 바로 그들이었다.

 

당대 최고의 여배우는 꿈속에 그리던 백마 탄 왕자를 얻었다.

부족할 것 없는 신출내기 왕자도 만인의 연인이자 금발의 미녀였던 은막의 스타를 얻게 되었다.

이처럼 부족할 것 없는 둘의 결혼은 전 세계인의 축복을 받았고 세기의 결혼이라는 명예도 얻게되었다.

 

하지만 수많은 남성 팬들은 더 이상 스크린에서 그녀의 모습을 볼수 없었다.

마지막 출연작이었던 '상류사회(High Society)'처럼 왕족의 신분으로 격상되며 스크린을 떠났기 때문이다.

 

 1956년 상류사회에서의 켈리

 

1982년 9월 14일모나코 모나코빌에서 교통사고로 52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그녀는 공비가 된 이후에도 세간에 주목을 받아오다

 

당시 결혼식장면

 

 

 

 

 

 

 

 

 

 

 해양 박물관

 

모나코에 있는 세계 유수의 해양박물관이다.

1910년 해양 연구가인 모나코 대공 알베르 1세가 창건하였다.

박물관 부문과 수족관 ·실험실 ·도서관 및 관측선(觀測船) 등으로 구성되어 있고, 장서는 약 5만 권이다.

1989년 현재의 관장은 1957년에 취임한 J.Y.쿠스토인데, 그는 애쿼렁(수중호흡기)의 발명과 해중영화(海中映畵)로 유명하다.

 

이 해양박물관은 모나코만(灣)에 임한 절벽에 세운 장려한 건물이다.

지하에는 수족관, 1층에는 심해어(深海魚)를 비롯한 풍부한 해양생물의 표본류...

2층에는 대공이 사용한 관측선 이론델호와 해양학 ·수산학 관측용 측기(測器), 기타 관계자료 등이 전시되어 있다.

고전적인 각종 해양관측용 측기류에는 대공이 사용하던 귀중한 것들이 많다.

 
건물 전면에는 관측선을 타고 있는 알베르 1세의 동상이 있다.
바다와 면한 쪽에는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국제해양방사능연구소가 있다.

 

지중해의 푸른 물결을 보았는가.

핀란드로 향하는 바이킹라인에서 바라보았던 북대서양의 푸른 바다도, 포르투갈의 로까곶에서

내려다본 대서양의 넘실대던 파도의 하얀 거품도, 그리스 에게해의 짙은 바다도 이처럼 고요하게 빛나고 있진 않았다.

 

타오르는 태양 빛을 온몸으로 받아내려는 듯 끝없이 펼쳐진 모나코 앞 지중해의 푸른 물결은 금빛으로 물들고 있었다.

그렇게 바다는 그저 고요히 넘실 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전망대 아래로는 조용한 계단이 이어져있다.

온갖 종류의 선인장과 나무로 둘러싸인 계단 한 켠의 작은 공간엔 다정한 연인들이 하나뿐이 벤치에 앉아 사랑을 속삭이고 있었다.

 

울창한 나무가 제공해주는 그늘을 벗삼아 눈앞의 푸른 바다를 바라보며 그들은 어떤 대화를 나누었을까.

누군가 말했다.

바다는 모든 것을 다 받아 주기 때문에 바다라고.

그들 역시 서로의 마음을 눈앞의 저 바다처럼 조금의 망설임없이 모두 다 받아주기를 약속했던 건 아닐까.

그 뒤로 멀찌감치 떨어져 그 벤치에 앉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또 한 쌍의 연인들이 서있었다.

아무래도 연인들만의 명당이 아닌가 싶다.

 

계단을 내려오니 요새 위에서 바라본 항구가 나타났다.

항구 뒤로 활기 넘치는 모나코 시가지가 펼쳐져 있다.

골목골목을 돌아다니며 시간을 보내자 이제는 익숙해진 유럽의 풍경에 더 이상 새로울 것 없는 무료함에 젖게되었다.

솔직히 말해서 유럽의 아름다운 소도시를 두루 돌아다닌 사람들에게 모나코는 그리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오진 않을 것이다.

 

 

  어디선가 본듯한 거리의 풍경과 그리 놀라울만한 문화적, 역사적 유적도 딱히 없는 이 나라는

카지노와 그랑프리 그리고 모나코 왕비 그레이스켈리의 흔적이 묻어있는 곳으로 유명할 뿐이다.

프랑스 대혁명 이후 찾아온 그리말디家 재정의 악화는 결국

 

이 나라가 독립 주권국을 지탱하기 어려운 경제적 난국을 초래했다.

그에 대한 방안으로 1863년 샤를3세에 의해

시행된 카지노사업은 오늘날 전세계 백만장자들의 손과 발을 묶어두기 시작했다.

카지노 사업의 대성공으로 숙박시설, 극장시설 등이 정비되었고 결국 오늘날과 같은 관광국가로 발돋음하게 되었다.

 

하지만 관광보다는 휴양국가라 함이 더 옳을 듯 싶다.

지중해의 푸른 물결에 몸을 식히다 지루해질 때쯤 잠시

이곳에 들러 카지노를 즐기며 스트레스를 풀다 가는 그런 휴양코스 말이다.

 

하지만 이런 것도 돈많은 부유층 사람들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일게다.

정장차림이 아니면 들어가지 못하는 카지노가 아닌가.

그래서인지 이곳에선 거리의 부랑자나 두 눈이 충혈된 흑인들의 모습을 찾아볼 수가 없다.

 비록 세금을 내지 않고 징병제도 없는 꿈의 낙원이지만

그러한 것들은 아마도 부르주아만의 유토피아적 산물이 아닌가 싶다.

 

우리에겐 아니 적어도 나에겐 그저

그레이스켈리의 흔적과 샹송 '모나코'의 감미로운 선율이 떠오르는 그런 나라일 뿐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 작은 나라가 가져다주는 묘한 매력이 달콤하고 또 진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니스와 칸으로 오갈 수 있는 길목에 버티고 있는 모나코의 매력,

즉 서로 상반된 두 해변의 풍경에 지칠 때 쯤 잠시 들러

이렇게 세계에서 두 번째로 작은 소국 모나코를 잠시나마 맛볼 수 있다는 것이다.

 

 

 

 

 

 

 

 

 

 

 

 

 

 

 

 

 

 

 

 

 

 

 

 

 

 

 

 

 

 

 

 

 

 

 

 

 

 

 

 

 

 

 

몬테카를로Monte-Carlo)

 

몬테카를로Monte-Carlo)는 모나코를 구성하는 10개 행정구 가운데 하나이다.

종종 모나코의 수도로 오해되기도 하나 이는 사실이 아니며, 도시 국가인 모나코의 수도는 모나코 영토 전체이다.

지중해 연안의 리비에라 해안에 위치하고 있는 몬테카를로는 프랑스가 그 주변을 둘러싸고 있으며, 이탈리아와도 매우 가깝다.

거주 인구는 약 3,000명이다. 카지노도박장으로 유명하다.

 

 

 

 

 

 

 

 

 

Monaco - Jean Francois Maurice 

 

모나코의 너무나도 무더운 28℃의 그늘에서
세상엔 오직 우리 둘 뿐이었죠
모든 것이 푸르렀고 모든 것이 아름답기만 했습니다
그대는 두 눈을 지긋이 감았고 태양은 드높았지요
그대를 어루만지는 내 손은 뜨거웠지요
 
아무 말도 하지 마세요
마음이 이끄는 대로 나를 안아주세요
나는 행복하답니다 사랑이 우리 곁에 있으니까요 
우리는 행복해요
 
모나코 28℃의 그늘 아래에서
그대는 아무런 말도 없습니다
나는 담배를 껐습니다 여전히 따가운 날씨였지요
그대의 입술은 야생과일처럼 향기가 가득했죠
그대의 머릿결은 황금빛 물결 같았지요
그대는 내 마음을 빼았었지요
아무런 말도 마세요 사랑이 우리곁에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