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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라쿠프 (Krakow )-구 시가지-폴란드

이종국 2010. 4. 20. 19:22

 

크라쿠프(Krakow)-구 시가지-폴란드


크라쿠프(폴란드어:Kraków, 독일어:Krakau)는 마우폴스키에 주의 주도이며, 비스와 강에 접한 하항이다.

17세기초반에 바르샤바로 수도를 옮길 때까진 크라쿠프가 폴란드 왕국의 수도였다.

많은 유적들이 남아 있으며, 폴란드에서도 가장 오래된 도시 가운데 하나이고, 폴란드의 공업, 문화의 중심지이다.

 

폴란드 역사의 산증인고 그역사를 빨아들인 도시이다.

게다가 과거 전쟁의 포화 속에서도 손상되지 않아, 다양한 시대의 고전 건축물들을 풍부히 볼 수 있다.

 

비스와 강과 바벨성

 

비스와 강변에 우뚝 솟아있는 이곳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흔적은 5만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6세기 까지 바벨성은 폴란드 왕들의 처소였다.

 

건물 대부분은 르네상스 양식이며 16세기 이태리 건축가에 의해 세워 졌다.

동쪽 내부엔 왕실 보물 박물관과 무기 박물관 그리고 서쪽엔 동양에서 수집한 ‘바벨성의 동방 수집’실이 있다.

바벨성의 가장 훌륭한 유적은 고딕양식의 대성당이다.

역대 왕들의 대관식을 했던 장소이자 그들의 무덤이 있다.

 

 

특히 황금색 지붕을 한 ‘지그문트’ 예배당은 르네상스 양식의 걸작으로 꼽는다.

그리고 폴란드가 고향인  요한 바오로2세 교황이 젊은 시절 사제로 활동 했던 곳이기도 하다.

그 외에도 여러 망루들과 19세기 오스트리아 군대가 만들어 놓은 방어탑 성문 그리고 성벽을 두른 빨간 벽돌이 인상적이다.

 

크라코프 상공에서 가장 높은 건물은 마천루가 아니라, 20세기 산성비에 의해 흠집이 난 오래된 교회의 뾰족 첨탑들이다.

그러나 크라코프는 과거 사건들을 조용히 기념하는 역사의 도시가 아니라,

그 역사의 성격과 정신을 가지고 살아 있는 도시이다.

공원에 둘러 쌓인 이 곳의 구시가는, 아담하고 아주 매력적이다.

광장 시장(Main Market Square)옆으로 역사적 건물들과 박물관, 교회가 있다.

 

10세기 성 아달베르트 교회(St Adalbert's Church)는 가장 오래된 교회 중 하나이다.

관대하고 열정적인 신부를 만난다면, 개종한 프란체스코 교회 건물에 있는 관을 열어줄 지도 모른다.

이 안의 미이라를 멍하니 보고 있으면, 계획한 점심메뉴를 바꾸게 될지도..

 

가장 가 볼만한 박물관 중 하나는 크자르토리스키(Czartoryski)박물관이다.

아시아의 수공예품과 무기뿐만 아니라 인상적인 유럽 예술품도 전시되어 있다.

 

비스와 강 상류에 위치해 있고 시가지는 바벨 성을 중심으로 비스와 강 양안에 널리 분포되어 있다.

인구는 75만명으로 바르샤바, 우치 다음으로 폴란드에서 인구가 3번째로 많은 도시이다.

 

그렇지만 크라카우 사람들은 ‘양’보다 ‘질’이 중요하다고 단호하게 말한다.

2차대전 때 폴란드 인구는 25%감소했다. 이 수치는 당시 가장 많은 고통을 받은 국가라는 표시다.

특히 크라쿠프는 인구의 29% (약 64,000명)가 유태인이었기 때문에 가장 비극적인 피해가 컸던 곳이다.

지금은 유태인 수백 명만이 남아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수백 년 동안 세계적으로 명성이 이어져온 이 곳은 경제와 문화적인 면에서 폴란드의 중추적인 역할을 해오는 곳이다.

비스와 강변에 세워진 크라쿠프는 오랜 세월 동안 폴란드의 중심 도시였이다.

수천 개의 유적이 있는 도시로서 6세기 이상 전통을 지닌 활기찬 문화의 중심지이다.

 

중세기 초, 이곳은 “비슬라니에” 종족의 중심지였다.

서기 1,000년에 크라쿠프에 주교구가 설치 되었다.

11세기에 ‘카시미르’왕이 크라쿠프를 폴란드 수도로 정하면서 바벨성 자리에 건물을 세웠다.

타타르족에 의해 파괴된 이후 정방형의 광장을 만들고

그 것을 중심으로 한 체스판 모양의 거리구조를 가진 도시가 탄생 되었다.

오늘 날까지 그 형태가 유지되고 있다.

카시미르 대왕이 집권시기인 14세기는 크라쿠프 전성기로 고딕 양식으로 바벨성과 도시를 지었다.

대왕은 또한 폴란드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인 크라쿠프 아카데미(야기엘론 대학의 전신)를 창설했다.

 

야기엘론 왕조의 마지막 시기에 ‘지그문트 3세 바자’가 17세기초(1609) 폴란드의 왕궁을 바르샤바로 옮겼다.

그러나 크라쿠프는 여전히 왕국 수도의 명칭을 유지하면서

대관식과 왕실 장례식, 그리고 왕실 묘를 안치하는 도시로 남아 있게 된다.

 

17세기 중반과 18세기 초에 스웨덴 군대에 의해 크라쿠프는 파괴 되었다.
그 후 폴란드는 오스트리아와 러시아

그리고 프러시아에 의한 3차례 국가 분열 을 겪게 되는데 제 3차 분할 때 크라쿠프는 오스트리아에 넘어가고 만다.

나폴레옹 패전 이후 빈 회의에서 크라쿠프는 자유도시로 선포하게 된다.

그러나 1864년 크라쿠프 자치시가 폐지되고 바벨성엔 오스트리아 군인들 병영이 설치 되었다.

1차대전이 끝난 1918년 크라쿠프는 자유를 찾게 되었다.

실로 123년 만에 독립회복이었다.

2차 대전 때엔 크라쿠프 남쪽 도시 '카시미르'에 거주하는 유태인 대량 학살 시기였다.

1945년 1월 18일 소련군에 의해 해방 되었다.

전 후 시기에 공업화가 추진되어 많은 공장이 들어서서 심각한 오염을 일으키고 있다.

현재 크라쿠크가 풀어야 할 과제 중 하나다.

1978년 유네스코는 크라쿠프 구시가지를 세계문화 유산으로 선정 했다.

도시 중심부는 크지 않기 때문에 걸어서 다니기에 충분하다.

플로리안스키 문을 통과해서 골목을 빠져나오면 중앙광장에 이른다.

가운데 직물회관이 있고 광장 옆으로 역사적 건물들과 박물관, 교회가 있다.

 

가장 가볼 만한 박물관 중 하나는 차토리스키(Czartoryski)박물관으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담비를 안은 여인' 이라는

불후의 명화가 소장되어 있으며 아시아의 수공예품과 무기뿐만 아니라 인상적인 유럽 예술품도 전시되어 있다.

광장에서 큰길을 따라 계속 가면 웅장한 바벨 성이 나타난다.

바벨 성을 보고 강변으로 가는 것을 잊지 말자.

그곳에서 크라카우의 전설 속의 용을 만날 수 있다.

 

시청 탑과 직물회관 

 

수세기 동안 시장 광장은 거대한 거래 센터였고 무역 도시와 같은 거대한 거래 조직망을 형성했던 곳이다.

길이 100m인 직물회관(SUKIENNICE : THE CLOTH HALL)은 13세기 만들어진 것으로, 칸막이로 된 상품진열 가게였다.

 

중앙시장 광장

 

중앙시장은 중세유럽에서 가장 큰 광장이었고 지금도 가장 크다.

200m X 200m넓이를 가진 정방형의 광장은 몽고 침입 이후 1257년에 조성되었다.

이 곳은 크라카우에서 가장 활발한 곳이며

거리의 악사, 꽃을 파는 사람, 거리 공연가, 마차, 결혼 파티, 여행단체 등이 모여드는 곳이다.

광장은 교통이 통제되는 곳이며 여름에는 광장 전체가 거대한 노천 Cafe로 변모한다.

광장에는 식당과 Cafe에서 꺼내온 탁자와 의자로 가득 찬다.

 

 

 

시청 탑...

 

시청 탑은 14세기- 15세기에 걸쳐서 만든 것으로 중세에 있었던 시청건물의 일부분이다.

시청의 많은 부분은 19세기 말에 불에 타서 없어졌다.

탑은 크라카우 역사박물관의 일부로 사용되고 있으며 여름에만 문을 연다.

 

 

직물회관 내부

 그러나 불이 난이 후 르네상스 스타일로 새로 만들었다.

그 옛날 1층에선 옷을 팔았으며 윗 층에선 다른 여러 가지 상품들을 팔았다.

 이제 1층에선 폴란드 예술품을 비롯한 크리스탈, 가죽공예품, 목공, 은제품, 호박석, 성물, 수공예품 들을 구입 할 수 가 있다.

2층은 19세기 폴란드 미술 겔러리로 사용되고 있다. 오후 3시면 문을 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