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건축물/♣----이탈리아

나폴리(Naples)-이탈리아

이종국 2010. 8. 15. 11:55

 

 

나폴리(Naples)-이탈리아

 

영어명은 네이플스(Naples)라고 한다.
로마·밀라노 다음가는 이탈리아 제3의 도시이다.
 나폴리만(灣) 안쪽에 있는 천연의 양항으로, 배후는 베수비오 화산의 서쪽 기슭까지 이르고 있다.

 

따라서 시가는 동쪽으로 차차 높아지는 경사지에 자리하고, 토양은 비옥한 화산재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아열대산인 오렌지의 가로수가 끝없이 연속되는  

 모래 해안은 배후의 베수비오 화산과 더불어 지중해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을 이룬다.

따라서 예로부터 ‘나폴리를 보고 죽어라’라는 유명한 속담이 전해올 만큼 세계적인 관광도시의 하나이다.

 

 

 전형적인 지중해성 기후로, 최저 평균 기온이 8℃ 이하로 내려가지 않는다.

 연교차가 적은 점에서도 이탈리아의 도시 중 기후가 가장 좋다.

여름은 건조하나 사실상의 건기(乾期)는 1개월 미만으로 농업용수 문제도 다른 도시에 비해 절실하지 않다.

 

아주 드물게 눈이 내리는 일도 있으나, 연중 온난하여 주변 일대에는 오렌지·올리브·토마토 등 과실이 많이 산출된다.

또한 부근의 비옥한 캄파니아 평야에서는 맥류·과실류의 집산가공이 활발하다.

 

 

나폴리는 그 이름이 말하여 주듯 그리스의 식민도시 네아폴리스가 그 기원이다.
이에 대응하는 팔레아폴리스가 어디에 있었던가 하는 데 대하여는 여러 설이 있어 일치하지 않는다.

 

화산분화를 피해 온 주민들에 의하여 건설된 것으로 짐작된다.

고대 로마시대에도 번영하였던 항도로 알려졌으며, 로마시대의 기본적인 가로망은 현재 시의 중심지에 그대로 남아 있다.

중세를 통하여 나폴리에는 비잔틴문화의 영향이 강하였으나 12세기 이후에는 에스파냐 세력의 영향이 강해졌다.
 
남이탈리아를 지배하는 나폴리 왕국의 수도가 되었다.
18세기 말 부르봉 왕조 지배하의 나폴리는 인구 40만을 헤아려 이탈리아반도 최대의 도시였다.

 

 

1860∼1861년 G.가리발디에게 정복되어 양(兩)시칠리아 왕국의 수도로서의 시대는 끝났었다.

그후에도 현재에 이르기까지 남이탈리아의 중심도시로서 근대공업의 발전도 이탈리아 남부에서는 가장 앞서 있다.

 

나폴리항은 제노바 다음가는 이탈리아 제2의 상항(商港)인데,

 이 항구가 1924년에 확장되고부터 현대 나폴리의 발전이 비롯되었다.

   
공업은 서쪽 포지리포 지구 및 남동 해안을 따라서 발전하고 주택지구도 교외에 부단히 발전해 갔다.
남부 각지에서 흘러들어오는 인구에 의한 빈민문제 등 사회문제도 심각하다.

공업으로는 전통적인 식료·섬유피혁공업과 병행하여 금속·화학·기계공업 등도 활발하다.
제2차 세계대전으로 대부분의 시가지·항만시설이 파괴되었으나

 고대 로마시대의 유적, 주로 17∼18세기의 바로크 양식의 교회 ·왕궁 등은 복구되었다.

 

 

나폴리는 베수비오 화산과 나폴리만의 아름다운 풍경으로 세계 3대 미항의 하나로 알려져있다.
가까이에 있는 폼페이의 유적이나 카스텔 누보 등의 건물, 또 나폴리 민요·요리 등으로 관광의 중심지를 이루고 있다.

나폴리만에 면한 소도시들은 나폴리의 위성도시 성격을 강하게 띠고 있다.
동시에 활발한 어항, 마카로니 생산의 중심지, 카메오 등 조개세공의 산지로서 유명하다.
또한 1224년에 창설된 종합대학과 동양연구대학, 1737년 이래의 산카를로 가극장(歌劇場) 등이 있어 학예중심지로도 유명하다.
 
박물관으로는 BC 79년 베수비오의 화산재로 매몰되었던 부근의 폼페이와 헤르쿨라네움 두 도시의 귀중한 고고학적 유물이 보존되어 있다.

이밖에 해양박물관, 유럽 유수의 수족관(水族館), 육·해군기지, 음악학교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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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체국 신축을 요구하던 노래에서 세계의 명곡으로

  

나폴리 주변의 지방을캄파니아(Campania)라고 한다.

그리고 캄파니아의 바로 남동쪽에 붙은 지방은 바질리카타(Basilicata)라고 한다.

현재도 이탈리아에서는 가장 낙후한 지방의 하나로 손꼽힌다.

 

바질리카타는 예로부터 지진이나 가뭄을 비롯한 자연재해가 많은 지방인데,

예수 그리스도의 무죄를 인정하면서도 십자가 처형을 반대하지 않은 필라투스(빌라도)총독이

바로 이 곳 출신이기 때문에 신의 저주가 내린 것이라고 믿는 사람도 있다.

 


1900년대 초 바질리카타 지방은 오랜 가뭄으로 인하여 큰 피해를 보고 있었다.

1902년 9월 15일 당시 76세이던 이탈리아의 수상 자나르델리는 재해의 현장을 순방하는 길에 소렌토의 임페리얼 호텔에 묵게 되었다.

 

당시 소렌토에는 훌륭한 호텔은 있었지만 우체국이 없었기 때문에

당시 소렌토 시장을 역임하고 있던 호텔주인 트라몬타노는 수상에게 우체국을 하나 세워줄 것을 청원했다.

 

수상은 더 급한 일도 있는데 무슨 우체국이냐면서 역정을 냈지만, 결국에는 그의 청원을 받아 들였다.

트라몬타노는 데 쿠르티스 형제를 불러 수상이 우체국을 세워주겠다고 하는 약속을 잊지 못하도록 즉시 노래를 하나 만들도록 했다.

 

이리하여 두 형제는 소렌토의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호텔의 발코니에서 앉아 불과 몇 시간 만에 노래를 만들고,

나폴리의 어느 소프라노를 데려다가 수상이 소렌토를 떠날 때 부르게 했다고 한다.


이 노래가 바로 [토르나 아 수리엔토(Torna a Surriento)]이다.

우리말로 번역하면 ‘돌아오라 소렌토로’인데, 수리엔토(Surriento)는 소렌토(Sorrento)의 나폴리식 표기이다.


데 쿠르티스의 후손들의 증언에 의하면,

이 노래는 원래 잠밧티스타 데 쿠르티스가 트라몬타노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노래를 하나 헌정하려고 동생을 불러

1894년에 곡을 대충 붙여 만들어 놓았는데, 수상이 방문한 것을 기회로 이 노래를 새로 다듬었다고 한다.


그 후 나폴리 근교 피에디그롯타 가요제를 준비하던 출판업자 비데리는

이 노래의 선율이 가진 엄청난 잠재적 가치를 파악하고 잠밧티스타에게 가사를 고쳐 쓰도록 제의했다.

 

새로운 가사는 나폴리 방언으로 씌어졌는데,

소렌토를 떠나려는 연인을 붙잡는 듯하면서 실제로는 소렌토의 아름다움을 찬양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바다를 보라, 얼마나 아름다운가
시정을 듬뿍 품고 있도다
너를 생각하는 사람을
꿈꾸도록 하는 너처럼 말이다
보고 보라, 이 정원을
맡아보고 맡아보라, 이 오렌지 꽃향기를
이렇게도 오묘한 향기는
마음속에 파고드는데
그래 너는 “난 떠나요, 안녕!”이라고 말하는구나
너는 멀어져 가누나, 이 마음으로부터
사랑의 땅으로부터
그래, 돌아오지 않을 마음이란 말인가
그렇지만 날 두고 떠나진 말아다오
내게 이런 고통은 주지 말고
돌아오라 소렌토로
나를 살게 해다오.

 


Vide ’o mare quant’ e bello
Spira tantu sentimento
Comme tu a chi tiene mente
Ca scetato ’o faje sunna
Guarda, gua chitsu ciardino
Siente, sie sti sciure arance
Nu prufumo accusi fino
Dinto ’o core se ne va
E tu dice “I’ parto, addio!”
T’alluntane da stu core
Da la terra de l’ammore
Tiene ’o core ’e nun turna
Ma nun me lassa
Nun darme stu turmiento
Torna a Surriento
Famme campa

 

 

이 노래가 나폴리의 피에디그롯타 가요제에 첫 선을 보였을 때, 관중들은 모두 넋을 잃고 말았다.

단순한 ‘우체국 신축 청원가’ 에서 세계적인 명곡으로 탈바꿈하는 순간이었다.

이 때는 자르나델리 수상이 이미 세상을 떠난 다음이고, 소렌토에는 이미 우체국이 세워져 있었다.

 

[돌아오라 소렌토로] 가 탄생한 임페리얼 트라몬타노 호텔과 작곡가 에르네토스 데 쿠르티스.

 

  

유혹하지 못 하는 처녀

 

제 2차 세계 대전이 끝난 다음 미군이 나폴리에 주둔을 하면서부터 강렬한 리듬을 바탕으로 하는 미국의 대중음악이 물밀 듯 몰려 들어왔다.

그러면서 섬세한 선율을 중요시하는 나폴리 노래의 전통은 갈 곳을 모르고 서서히 표류하기 시작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침잠되어 간 나폴리 음악...

 

이른바 나폴리의 전통을 이어간다고 하는 요즈음 노래들은 경음악 쪽으로 지나치게 치우쳐 있고

상업주의에 깊게 물들어 있기 때문에 과거의 그 찬란한 모습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풍부한 서정성과 예술성을 담고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던 나폴리 노래의 전통은

아쉬움만을 남긴 채 장구한 나폴리 역사의 뒷전으로 밀려나고 만 것일까.


만약 지금 율리시스가 배를 타고 나폴리 앞 바다를 다시 지난다면

이제는 선원들의 귀를 막아야 할 필요도, 자신의 몸을 돛대에 묶을 필요도 없다.

 

그리고 파르테노페는 한 번 더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 할 지 모른다.

더 이상 아무도 바다에 빠뜨릴 정도로 유혹할 수 없기 때문에 말이다.
파르테노페 거리에 서서 찬란한 지중해의 햇살을 받으며 지나는 배들을 바라본다.

 

나폴리를 지키는 수호신처럼 솟아 있는 베수비오 화산을 배경으로 파르테노페의 무덤이 있었다고 하는 계란성은

옛 전설을 고이 간직한 듯, 유유히 지나는 배를 지켜본다.


그때 별안간, 등 뒤 멀리서 사이렌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한다.

소리는 점점 커져 온다.

고막을 찢을 듯한 굉음을 토하면서 경찰차들이 파르테노페 거리를 질주하고 있다.
귀를 막아야 한다.

산타 루치아 해변의 작은 배들. 나폴리를 대표하는 노래 가운데 하나인 [산타 루치아]는 나폴리의 아름다움을 찬양하는 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