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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진보강 ‘우물쭈물’ 왜?…예산·기술 모두 ‘허당’

이종국 2011. 3. 15. 15:16

내진보강 ‘우물쭈물’ 왜?…예산·기술 모두 ‘허당’                            석유선 기자 runpen@ctn.or.kr
조적조 건축물, 내진설계 열외…건축비, 기술기준 문제 산적

 

일본 열도를 뒤흔든 대지진 여파로 인해 국내 건축물의 내진능력에 대한 우려가 계속되는 가운데, ‘내진설계 보강’이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기존에 내진설계가 되지 않은 건축물의 내진설계 보강이야말로,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닌 대지진의 위험에서 대규모의 재산 및 인명피해를 막을 수 있는 대안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 역시 지난해 발생한 아이티 대지진과 경기도 시흥 발생 등을 계기로 국내 건축물의 내진설계 보강을 서두르고 있지만, 좀체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국내 지진 전문가들은 이같은 현실은 국내 건축물의 내진설계 보강을 위한 예산이 태부족한 데다 구조전문가와 건축사간의 역할분담, 기술기준 정립과 관련법 개정이 시급히 이뤄져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1~2층이하 조적조 건축물, 지진 특히 취약

우리나라는 그동안 유라시아판의 경계부분 중에서도 내부에 위치해 고위험 지진대에 위치한 일본이나 중국과 달리 비교적 지진에 안전한 지대로 손꼽혀 왔다.

하지만 1978년이후 네 차례나 규모(Magnitude) 5.0이상인 지진이 발생해 인명 피해와 건물 파손이 있었으며 최근 30년간 '규모 3' 이상의 지진이 274회나 발생했다. 특히 1997년부터 지난해까지 지진 41건이 발생하는 등 최근 빈도가 많아지고 있다.

문제는 이렇게 지진 발생빈도가 늘고 있지만 우리나라 내진설계 적용 건축물은 극히 미미하다는 데 있다.

소방방재청의 지진종합방재책에 따르면, 우리나라 전체 건축물 680만여동 중 내진설계가 적용된 곳은 2.35%인 16만여동에 불과하다.

전국의 내진설계 대상 시설물 107만8052개 중 실제 내진 설계가 적용된 시설은 18.4%인 19만8281개에 불과하고, 87만9771개의 건축물은 내진 보강 대상이면서도 실제 적용되지 않아 지진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는 실정이다. 특히 학교시설은 1만8329개 동 중 13.2%인 2417개 동만 내진 설계가 적용된 것으로 나타났다.

내진설계 의무화는 1988년에 6층 이상, 10만㎡ 이상인 건축물에 도입됐다가 1995년 5층 이상 아파트, 총면적 1만㎡ 이상인 건축물, 다시 2005년부터는 높이 3층 이상, 총면적 1000㎡ 이상인 건축물로 확대됐다.

문제는 우리나라 건축물 중 40%에 해당하는 3층 이하의 ’조적조 건축물’이 특히 지진에 취약하지만 내진설계는 의무가 아니다.

이들 조적조 건축물은 1960~70년대 서울 등 대도시로의 막대한 인구유입으로 1990년대 초반까지 저렴한 공사비와 단기간의 공기를 장점으로 대거 건설됐다.

문제는 이들 조적조 건축물은 내진설계가 적용되지 않았고 20~30년이 넘은 노후화된 건물이라는 점에서 지진에 매우 취약하다는 데 있다.

실제로 1995년 일본 고베 지진 때 완전 붕괴된 건물 4만9000여 동 중 3층 이하 건물이 94%(4만6000여 동)를 차지했고, 1999년 대만 치치 지진 때도 71%가 3층 이하 건물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강철교 등 예산탓에 내진보강 ‘우물쭈물’

가장 대표적인 조적조 건축물로는 지난 2월 감사원에서도 지적당한 바 있는 한강철교가 해당된다. 하지만 한강철교는 예산 문제로 내진보강이 지연되고 있어 우려가 많다.

1911년, 1900년 각각 건설된 한강철교 A선(경인성 상행)과 B선(경인선 하행)는 교각 축 외측에 석축을 쌓고 호박돌과 콘크리트를 채워 넣은 조적교(組積橋)로 일반 철근 콘크리트 교각과는 달리 수평하중에 취약하다.

 

 

이같은 상황에서도 내진 보강 공사는 찔금찔금 이뤄져 2009년에 철교 A선(예산 16억원)의 교량받침만 보강공사만 이뤄진 뒤 2010년에 철교 B선(10억원) 교량받침이 보강됐다. 교각의 경우도 올해 철교 A선(31억원)이 우선 보강된 뒤 내년에 철교 B선(30억원) 보강공사가 진행될 계획이다.

이처럼 한강철교 내진 공사가 부분적으로 이뤄지다보니 수십억원을 들여놓고도 정작 교각의 내진성능이 확보되지 못해 지진에 취약해질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감사원은 평가했다.

이와 관련 철도공단 시설운영본부 관계자는 “연간 2500억원 이상의 시설 보수 예산이 필요한데 확보되는 예산은 1300억원 안팎에 불과하다”며 “예산 확보가 되면 우선 순위에 따라 내진 보강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예산 문제가 국내 내진설계 보강의 발목을 잡자, 정부도 대책 마련에 나섰지만 여전히 미흡하다는 지적이다.

정부는 1998년 내진설계기준 법령 제정 이전에 설치된 공공시설물의 경우 5년마다 내진보강 기본계획을 수립하여 연차별로 내진보강토록 의무화하고 있다.

민간 건축물의 경우는 내진을 강화하는 내용을 담은 ‘지진재해대책법 개정안’을 마련, 2년째 국회에서 계류되다 지난 11일에야 해당 개정법안은 국회  행안위 전체회의를 통과했다.

그나마 이 개정안도 민간 건축물의 경우 내진 보강을 하면 세제 혜택 등 인센티브를 주되 의무를 약화시킨 것이 문제다.

이는 기존 건물을 내진 보강할 때 비용은 신축 시 내진설계 비용(건축비 대비 2~5%) 보다 더 비싸다는 데 있다. 이로 인해 인센티브가 크거나 의무화하지 않는다면 실제 개선 사례는 많지 않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국회 행안위 박대해 의원(한나라당)은 "이번 일본 강진을 계기로 우리나라에서도 지진 피해에 대응하기 위해 공공시설 긴급 안전진단을 실시하고 내진설계 의무가 없는 저층 건축물도 미국 일본 중국처럼 의무화하는 논의를 본격화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구조기술사 역할 및 기술기준·기술개발 시급

내진설계 보강을 위한 예산 지원도 시급하지만, 관련 제도와 기술기준 도 시급히 정비해야 할 과제다.

유영찬 건설기술연구원 연구위원은 "건축물의 내진 보강설계는 기존 건축물의 정밀안전진단을 바탕으로 이뤄져야하는 고난이도 기술이 요구된다"며 "하지만 현재 건축물의 내진 보강을 위한 인허가 절차가 건축사가 주도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즉, 건축물의 안전성 검토 및 내진보강 설계는 관련분야 전문가인 건축구조기술사가 직접 주도하고 책임져야 함에도 건축사 주도로 이뤄지고  고난이도 기술에 비해 낮은 용역비가 책정되는 것이 문제라는 말이다.

엔지니어링협회 관계자도 "현행 건축법상 내진설계와 내진감리의 대부분이 건축사 책임으로 돼 있다"며 "내진설계 관련기술은 정교하고 고도의 전문지식고 경험이 필요하므로 '건축안전법' 신설을 통해 구조설계기술사를 신설해 디자인을 강조하는 건축사와 기술안전을 강조하는 엔지니어를 동시에 양성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또한 건축물 내진보강 기술기준도 제대로 정립되지 않은 것도 문제다.

유 연구위원은 "지진하중을 포함한 국내 건축물의 구조안전성 평가 및 설계를 위한 기준이 단계적으로 발전하고 개정되고 있지만, 아직도 일선 실무에서 활용가능한 엔지니어링 기술로서의 기반 및 기술기준이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이를 위해 국토해양부와 행정안전부와 소방방재청 등 관·산·학·연 전문가를 중심으로 시설물의 내진보강 공사를 위한 기술기준의 정립이 시급하다는 것이다.

특히 앞서 언급한 주거용 건축물의 대부분인 저층의 조적조 건축물에 대한 내진보강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국내 비내진 건축물의 구조·시방을 고려한 실효적 내진보강 기술 개발이 시급하다고 유 연구위원은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