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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델베르크(Heidelberg)-독일철학과 예술이 꽃핀 학문의 메카

이종국 2012. 10. 18. 16:56

 

 

 

 

하이델베르크(Heidelberg)-독일철학과 예술이 꽃핀 학문의 메카

 

 울창한 숲으로 둘러싸인 오덴발트의 산줄기 아래 유유히 네카어강이 흐른다.

이 네카어강과 라인강의 본류가 합류되는 야트막한 언덕에 세워진 고도(古都) 하이델베르크이다.

 

네카어강(江) 연안에 자리잡고 있는 도시로 12세기에 처음 문헌에 등장하였다.

1225년 라인 백작령(領)이 되었으며 1720년까지 선제후의 거성이 자리잡고 있었다.

 

독일 남서부 바덴뷔르템베르크 주에 있는 도시.

 

울창한 숲으로 뒤덮인 오덴발트 구릉지대에서 운하화된 네카어 강이 빠져나와 라인 평야로 흘러드는 지점에 있다.

 1196년에 처음 문헌에 등장한 이 도시는 1720년까지 라인팔츠의 중심지로서 선제후인 팔츠 백작가의 거주지였다.

 

 30년전쟁(1632) 때 폐허가 되었고, 1689, 1693년에는 프랑스인의 침략으로 거의 파괴되었다.

지금 남아 있는 주요건물들은 대부분 중세의 고딕 양식이 아닌 바로크 건축 양식(18세기 후반까지 유행함)으로 되어 있다.

 

 1386년 선제후 루프레흐트 1세(Ruprecht I)에 의하여 설립된 하이델베르크 대학교는

프라하 대학교와 빈 대학교의 뒤를 이어 독일어권에서는 가장 오래 된 대학으로 16세기에 종교개혁의 보루가 되었다.

30년전쟁(1618∼1648) 이후 쇠퇴하였다가

 프랑스혁명 전쟁 이후 옛 명성을 회복하여 19세기 독일의 대표적인 대학이 되었다.

 

 1952년 이후로 유럽 주둔 미군 총사령부가 자리잡고 있다.

또 16세기와 17세기 초에 건설되었다가 17세기 말 프랑스군에 의해 파괴된 고성으로도 유명하다.

이 성의 지하에는 하이델베르크 툰(Heidelberg Tun)이라는 약 5만 8080갤런 규모의 거대한 술통이 있다.

그밖에 1701∼1703년 건립된 시청사와 이 도시를 조망할 수 있는 ''철학자의 길(Philosophenweg)''이라 불리는 오솔길 등이 있다.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은 독일 신교도(칼뱅교도)의 신앙고백으로서
선제후 프리드리히 3세(Friedrich III)의 요구에 따라 작성된 것이다.

1563년 발행된 후 널리 호응을 받아 여러 신교 교파에도 채택되었다.

기계, 정밀기기, 피혁, 담배, 목제품 등의 제조업이 활발하다.

그러나 가장 중요시되는 것은 관광산업이다.

하이델베르크성(城)을 중심으로 해마다 수백만 명의 관광객을 유치하고 있다.

 

 

 

카를 테오도르 다리(Karl Theodor Brucke)와 멀리 하이델베르크 성(Heidelberg Schloss)이 보인다.

  

하이델베르크 성(Heidelberg Schloss)

 

 하이델베르크 시내에서 보이는 산 위에 붉은 빛이 도는 돌로 지어진 하이델베르크 성이 있다.

하이델베르크의 자랑이자 상징인 하이델베르크 성은

1400년대에 지어지기 시작해 16~17세기를 지나며 지금과 같은 르네상스 양식의 외형을 갖추게 되었다.

 

30년 전쟁, 프랑스의 공격 등으로 파괴되고 보수 되기를 반복하며 수난을 겪다가

1800년 프랑스의 샤를 드 그랭베르 공이 이 성을 보존할 것을 주장하면서 사라질 위기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성에 올라가면 지붕들이 모두 주황색인 하이델베르크 시내 전경을 감상할 수 있다.

네커(Necker)강과 카를 테오도르(Karl Theodor)다리도 한 눈에 들어와 하이델베르크의 아름다움의 진수를 느낄 수 있다.

 

성에서 제일 아름다운 건물이라는 프리드리히관과 프리드리히 5세가

 영국으로부터 데려온 아내 엘리자베스에게 하루 만에 지어 선물했다는 엘리자베스의 문 등 아름다운 볼 거리들이 많다.

 특히 엘리자베스의 문은 60대의 괴테가 30대인 여인을 만나 사랑에 빠진 곳으로도 유명하다.

 성의 지하에는 거대한 술 창고가 있고, 그 중에 가장 큰 술통에는 무려 22만ℓ의 술이 들어간다.

 

카를 테오도르 다리(Karl Theodor Brucke)

 

처음에는 나무로 되어 있었는데,

 강물이 불어나거나 폭설이 내리거나 불이 나면 쉽게 파괴되어 선제후 카를 테오도어가 돌로 다시 짓도록 명령하였다.

이에 1788년 네카어강(Neckar River) 위에 카를 테오도어 다리가 놓여지게 되었다.

 

시내 방향에 있는 문은 중세 시대에 도시 성벽의 일부였던 것이 현재까지 보존되어 있는 것이다.

다리 아래 부분이 아치형으로 되어 있어, 완만한 곡선을 이루는 산과 아름다운 조화를 이룬다.

 

 이 도시는 1802년 바덴에 양도되었고, 20세기에 상당한 발전을 이루었다.
1693년에 파괴되지 않고 남은 건물은 성령교회(1400~36)·마르슈탈(1590, 옛날의 왕실 마구간)·기사회관(1592)뿐이었다.

 그밖에 중요한 건축물로는 알테 다리(1786~88, 재건 1945 이후)와 시청(1701~03), 예수회 교회(1712)가 있다.

 

하이델베르크에서 가장 흥미롭고 인상 깊은 건물은 하이델베르크 성이다.

 이 성은 1689, 1693년에 프랑스인들에게 파괴되었고 1764년에는 벼락을 맞았지만,

강에서 100m 높이에 웅장하게 서 있는 붉은 사암 건물은 아직도 시가지를 압도하고 있다.

 

또한 이 성은 13세기에 짓기 시작했지만 가장 유명한 부분은 르네상스 시대에 만들어졌고,

성의 익면(중심 건물에서 옆으로 날개처럼 뻗은 부분)에는 오토-하인리히 관과 프리드리히 관이 있다.

 

프리드리히 관의 지하실에는 용량이 18만 5,500ℓ나 되는 거대한 포도주 통인 하이델베르크 술통(1751)이 있다.

 시내에서 쾨니히스슈툴 산(단층 지괴) 꼭대기까지 왕복 운행하는 케이블 철도를 이용하면 이 성에 닿을 수 있다.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하이델베르크대학교는 루페르트 1세가 세웠고, 1386년에 교황 우르바누스 6세의 인가를 받았다.

 이 대학교의 지질-고생물학 연구소에는 턱뼈 화석인 '하이델베르크인의 하악골'이 전시되어 있다.

 

학자들은 이 화석을 '호모 에렉투스'(Homo erectus)로 분류하고 있다.

 지금도 여전히 대학도시이자 주거도시이지만,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공장의 수효가 많이 늘어났다.

기계·정밀기기·가죽·담배·나무 제품이 이곳에서 생산된다.

가장 중요한 산업은 관광업이다.

 해마다 수백만 명의 관광객이 하이델베르크 성을 찾아온다. 인구 142,959(2003 추계).

 

 

 

 

 

 

 

 

 

 

 

 

 

 

 

 

 

 

 

 

 

 

 

 

 

 

 

 

 

 

 

 

 

 

 

 

 

 

 

 

 

 

이 성의 지하에는 하이델베르크 툰(Heidelberg Tun)이라는 약 5만 8080갤런 규모의 거대한 술통이 있다.

 

 

 

 

 

 

 

 

 

 

 

 

 

 

 

 

 

 

 

 

 

 

 

 

 

 

 

 

 

 

 

 

 하이델베르크 시청 청사와 시청 광장

 

하이델베르크의 하이델베르크시청 광장 직역을 하면

시장광장인 마크트플라츠(Marktplatz)를 굳이 시청 광장이라고 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거의 모든 독일의 도시들이 그렇듯 옛날 시청사 앞은

광장이 펼쳐져 있고정기적으로 시장이 서기 때문에 거의 대부분의 도시가 마크트플라츠라고 부른다.

 

도시 중에는 하우프트마크트(Hauptmarkt), 즉 중앙시장이라고 이름붙이는 곳도 있다.

광장에는 거의 예외없이 분수가 하나씩 놓여져 있고 주위에는 독일식의 목조건물이 아름다움을 뽐내며 늘어서 있다.

 그런데 이 하이델베르크시청사 주위에는 목재의 프레임이 겉으로 드러나보이는독일 특유의 목조건물이 눈에 띄지 않는다.

대신 이 도시에서 제일 큰 교회인 예수회 교회의 뒷부분이 시청사를 향하고 있다.

 

분수에는 그리스신화의 반신반인의 영웅 헤라클레스상이 있다.

시청 광장에는 일주일에 두번 오전에 시장이 선다.

그리고 일년중 따뜻한 계절에는 노천 카페가 열려있어서 지친 관광객들의 발걸음을 유혹한다.

 

 

 

 

 

 

성령교회 내부(Heiliggeistkirche)

하이델베르크 에서 가장 크고 중요한 의미를 지닌 교회라고 한다.

 원래 지어질 당시 가톨릭교회 였다고 한다.

 1693년에 파괴되지 않고 남은 건물은 성령교회(1400~36)·마르슈탈(1590, 옛날의 왕실 마구간)·기사회관(1592)뿐이었다.

 

 

 성령교회 후면입니다.
일층에 지어진것들은 마구간이었다하는데 지금은 기념품 판매점이 줄비합니다.

 

 

 

 

  성령교회 내부(Heiliggeistkirche)

 1398년에서 1515년에 걸쳐 지어진 성령교회 내부는 조명 없이도 상당히 밝은 분위기가 났다.

 이 내부 양식은 독일 남부에서 가장 인상적으로 건축된 것으로 유명하며 후기 고딕양식 으로 꾸며져 있다.

  

 

 

 

 

 

 

 

 

 

 

 

  교회 내부 중앙에 위치한 파이프 오르간 성령교회 에는 원래 13개의 파이프 오르간 이 있었다고 한다.

 저 오르간은 1980년에서 1993년에 제작된 최신(?) 오르간.

 

 

 

 

 

 중앙 거리 Hauptstrasse

 

도시 중심의 마르크트광장에서 비스마르크광장까지 이어진 거리이다.
리멘슈나이더의 작품 '12사도제단' 등이 있는

선제후 박물관과 그 옛날 학생들이

근신하기 위해서 들어갔다는 학생감옥,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학문을 교류하는 대학광장 등이 있다.
왕자와 마을 처녀의 사랑을 그린 희곡 <알트 하이델베르크>의 무대인 학생술집도 자리하고 있다.

 

 

 

 

 

 

 

 

 

 

 

 

 

 

 

 

 

 

 

 

 

 

 

 

 

 

 비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