틈...
외풍 없어 따뜻한 집, 환기도 안돼...
요즘 현대건축은 좀처럼 「틈」을 내주지 않는다.
잘 작성된 설계도면대로 차곡차곡 집을 짓다보면, 웬만해선 「틈」이 만들어질 수 없게 되어 있다.
게다가 건축법에서 요구하는 단열성능을 두루 겸비하다보면, 외부환경과는 완전히 차단된 별도의 실내공간이 조성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게 어느덧 현대건축기술의 상징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그렇게 우리건축은 그동안 춥고 배고프던 시절의 「틈」을 없애는데 주력하였다.
과거의 지혜나 경험 따위에는 아예 곁눈질 할 여유조차 없었다.
그 덕분에 이렇게 찬바람이 몰아치는 한겨울에도, 방안에서는 겨울추위를 잊고 지내는 호사를 누리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제는 옛날처럼 방안 윗목에 떠다놓은 접시물이 얼어붙는 진풍경도 없어졌다.
화장실에 간다고 몸을 움츠리며 발 동동 구르는 일도 사라져 버렸다.
아침마다 썰렁해진 방안 공기 때문에 서로 이불을 끌어당기며, 티격태격하던 어린 시절의 추억도 잊어버리게 되었다.
건축물에서 「틈」이 사라진 탓이다.
겨울로 접어들자마자 새로 문풍지를 바르고 병풍을 두르는 대신, 현대건축은 그 틈을 봉쇄시켜버린 것이다.
한동안 외벽에 단열재를 점점 두껍게 넣다가, 그것도 모자라 이제는 「우레탄 폼」으로 건축물의 외벽을 아예 밀봉해버렸다.
자연적으로 틈은 가라지게 되고, 실내는 더 따뜻해졌다.
그런데 문제는 거기에 도사리고 있었다.
건축물에서 틈이 사라지게 되니 파고들 찬바람도 없어졌지만, 오염된 실내공기도 좀처럼 밖으로 빠져나가지 못하게 되었다.
더구나 대부분 창문을 닫고 생활하는 겨울철엔, 실내에서 발생하게 되는 이산화탄소나 미세먼지 등이 갈 곳을 잃게 되었다.
어쩔 수 없이 집안 이곳저곳에 수북이 쌓이게 되는 것이다.
새로 입주한 아파트라면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새 가구나 인테리어 제품에서 쏟아져 나오는, 발암물질의 일종인 휘발성 유기화합물까지 숨을 쉴 때마다 어쩔 수 없이 들이마셔야 된다.
아니, 그것뿐만이 아니다.
건축물에서 틈을 없애고 단열성능을 높이는 데만 몰두하다 보니...
이번 이천 냉동공장 화재사건처럼 때로는 훨씬 더 처참한 결과를 빚게 되기도 한다.
아마 사람도 마찬가지일 것 같다. 틈이 막히면 답답해지지만, 빈틈이 생기면 소통이 한결 더 쉬워지게 된다.
현대건축에서 잃어버린 그 「틈」을 올해는 우리 사람들 곁에서 찾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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