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미래로 미래로...유라릴(Euralille)-릴
연말연시의 분위기라고는 해도 엄청난 인파였다.
코엑스 몰을 연상시켰다.
그러나 이곳은 프랑스 동북부 구석 인구 겨우 20만의 도시 릴의 유라릴(Euralille)...
상가. 영어표기로 ‘플랜더스의 개’에 나오는 바로 그 곳 플랑드르의 중심지가 릴이다.
그러나 릴은 주변의 고만고만한 도시들 중에서 조금 더 큰 도시일 따름이다.
그럼에도 이 도시의 이력서는 녹록치 않다.
세계 최초로 무인 전차를 놓은 도시, 프랑스에서 루브르 다음 규모의 박물관을 갖춘 도시,
아테네에게 자리를 내주었지만 2004년 올림픽을 유치하겠다고 나섰던 도시이다.
1994년 개장한 유라릴은 릴의 가장 중요한 공간으로 떠올랐다.
상가, 아파트, 사무소, 학교들이 망라된 이 복합공간의 성적표가 만만치 않다.
자본금의 100배에 이르는 투자유치. 프랑스 최고의 실업률로 고민하던 도시에
5천개의 일자리 제공. 도합 3만평 규모의 대지로 확장하는 2단계 사업 추진 중이다.
릴은 공업도시였다.
석탄과 직물이 이 도시를 받쳐주는 주요 산업이었다.
그러나 70년대 들어서면서 석탄은 경쟁력을 잃기 시작했다.
직물산업도 버티기도 힘들었다.
비인간적인 노동문제를 무릅쓰고 필사적으로 덤벼드는 한국과 같은 후발 국가들이 있었다.
산업체들은 기술집약의 체질개선이 아닌 저임금 외국노동자고용을 생존대안으로 선택했다.
외국인 노동자들의 거주지가 도시에 형성되면서 갈등요소들이 부풀어갔다.
릴은 막다른 골목으로 밀려갔다.
1973년 취임한 시장은 노동자들이 많은 도시답게 사회당 소속이었다.
피에르 모로아(Pierre Mauroy). 무려 28년을 재임한 그의 별명은 불도저였다.
막다른 골목의 돌파구는 철도였다.
릴은 프랑스, 벨기에, 영국을 연결하는 삼각형의 한 가운데 있었다.
종착역의 끝을 터서 이들을 연결하는 허브역이 된다는 전략이 수립되었다.
불도저 시장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미테랑 대통령이 모로아 시장을 릴 시장 겸직 수상에 임명한 것이다.
좀 더 서부의 도시 아미앵을 거쳐 해저터널로 영국과 연결하려던 TGV 노선 계획이 재검토 되었다.
막무가내로 떼를 써서 될 일은 아니었다.
필요한 것은 합리적인 설명이었다.
터널의 위치 선정은 영국이 동의해야 하는 국제적인 계획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릴을 통과하는 노선이 더 많은 국가와 연결될 수 있다는 계획안에 영국도 결국 설득이 되었다.
“대처가 우리의 구세주였다.”고 시 공보관은 회고한다.
새 기회는 풀어야 할 숙제를 계속 만들어냈다.
새 노선에 따라 기존 역을 옆에 두고 새 역을 건설하게 된 것이다.
두 역 사이에는 병영으로 쓰이던 만 오 천 평 가량의 빈 땅이 끼어 있었다.
잘못하면 이 작은 도시에 황무지를 사이에 둔 철도역만 두 개 생기고 말 상황이었다.
유라릴메트로폴(Euralille-Metropole)이라는 민관합자 개발회사가 설립되었다.
이 개발회사의 투자로 두 역을 연결하며 세워진 거대한 복합단지가 유라릴이다.
유라릴의 설계를 위해 건축가 8명이 초대되었다.
요구된 것은 구체적인 디자인이 아니라 이 도시에 대한 철학과 비전이었다.
네덜란드의 건축가 렘콜하스가 총괄책임 건축가로 선정되었다.
각 건물 부분마다 선정된 다른 건축가들의 작품이 차례로 완성될 때마다 저널들이 이들을 소개하면서 릴의 존재를 광고하게 되었다.
유라릴은 철도역이 아니라 도시 릴을 위한 계획안이었다.
이 초대형 상가를 살리겠다고 기존 도심의 상권을 황폐화시킬 수는 없었다.
유라릴 상가에 입주하려는 사업자에게는 기존 도시의 상가를 철수하지 않는다는 조건을 걸었다.
“현명한 건축주였다.
그들은 어떻게 도시를 살릴지 알고 있었다.”고 실무책임 건축가였던 플로리스 알커메이드(45)는 평가했다.
이런 전략은 개인적인 판단의 결과물이 아니었다.
이 개발회사는 건물의 크기뿐 아니라 건물의 질적인 수준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있었다.
시민, 공무원, 언론인, 심지어 철학자도 포함된 위원회가 매월 모여 건축가를 선정하고 건물의 질적인 문제를 점토하고 전략을 만들어 나갔다.
항공사들이 당하고 있지는 않았다.
철도회사가 따를 수 없는 운임을 제시하며 철도 허브로서의 릴을 위협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미 릴은 환승지가 아닌 목적지로 탈바꿈해나갔다.
역의 인근에 대형 문화공간 그랑빨레(Grand Palais)를 완성시켰다.
이 건물의 전시장 세 홀에는 주변 국가 도시의 시민들을 끌어들이겠다는 의지를 상기시키려는 듯 각각 파리홀, 브뤼셀홀, 런던홀이라는 이름이 붙어있다.
기차역에 도착한 사람들은 화려하고 우아한 유라릴의 상가를 걸어 다니다 자연스럽게 도시 내부로 흘러들었다.
2004년 올림픽 유치 노력이 릴을 빈손으로 남겨 두지는 않았다.
제노아와 함께 2004년 유럽문화도시로 지정을 받게 된 것이다.
유럽연합의 기금으로 릴은 문화공간을 확충하기 시작했다.
저소득층이 모여 사는 도시 남부 두 곳에 새 문화시설, 메종폴리(Maison Folie)가 세워졌다.
도시 전체가 문화도시가 되어야 한다는 전제에 의한 사업이었다.
비워진 맥주공장, 직물공장이 주민들을 위한 공간으로 재활용되었다.
이곳 극장은 대단한 음향시설을 자랑하지 않는다.
다양한 음악회, 전시회에 맞춰 변화할 수 있는 공간과, 함께 즐길 수 있는 따뜻하고 자유로운 분위기가 있을 뿐이다.
나비넥타이를 매지 않고 청바지입고 일하던 그대로 들어와도 좋다는 작은 공간이 조성되었다.
릴은 명실상부한 문화도시가 되었다.
문화도시로 변한 것이 아니고 문화도시로 만든 것이다.
시장으로 대표되는 시민들의 노력이 여기 있었다.
릴은 프랑스에서 지방세율이 가장 높은 시의 하나로 꼽힌다.
이제 후임 시장에게 자리를 넘긴 불도저 시장은 말한다.
“나는 시를 바꾸겠다고 공약했다.
그러나 나는 마술사가 아니다.
변화는 투자를 필요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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