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유럽 건축물/♣------헝가리

겔레르트언덕/ 해방기념 동상-부다페스트

이종국 2010. 6. 7. 10:45

 

 

 

  

헝가리-부다페스트

 

동양인의 먼 친척격인 헝가리.....

지난해 KBS방송국에서 수목드라마인  아이리스 촬영지인 헝가리의 수도 부다페스트이다.

헝가리에 대하여 아는게 무엇이 있나 곰곰히 생각해봤다.

 

1954년도인가 한국이 월드컵에서 헝가리에게 9 대 0 으로 깨진것이 가장 먼저 생각나고..

브람스의 헝가리 무곡 제5번.  집시. 유럽본토 최초로 지하철을 놓은 도시 (런던은 섬이라 제외하고)..

 

또 뭐가있나...

세계에서 자살율이 가장높은 나라라고 하지 아마?

자살율이 10만명당  46명이라는데 뭣 때문에 자살율이 높을까...??

 

헝가리의 인구는 약 천만명 정도인데 이중 20%인 약 2백만명이 수도인 부다페스트에 살고 있다고 한다.

인종은 마쟈르 족이라고 하던데..

 

헝가리의 국토면적은 우리 남한과 거의 비슷하고 역사적으로는 우리나라 처럼 수많은 외침을 받았고

1차대전 종전후에는 원래 영토의 70 프로를 잃어버렸고 1920년대 부터 50년대 까지는 유태인 대학살, 불황,

그리고 쏘련의 통치까지 받아야 했던 기구한 운명의 나라이다.

 

지금의 생김새를 보면 전혀 믿기 어렵지만은 헝가리의 조상은 중앙아시아 유목민이다

우리의 국사책에서 수시로 나온 흉노족이란 이름으로 더익숙한데.

 

유럽에서는 그들을 훈족이라 불렀다

물론 헝가리라는 국가명도 거기에서 유래되었다

그래서인지 헝가리는 동양처럼 온천이 발달했고 언어도 알타이어 계통에속한다

헝가리에 대한 나의 단편적인 여러 조각들을 생각해가며 부다페스트의 여행을 시작해보자.

 

 유럽의 많은 도시들 중 도시자체가 주는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곳을 찾기란 그리 쉽지 않다.
대도시 파리에서 조차 도시 주는 느낌은 황량하다.

유람선 바또뮤슈에서도 야경에 대한 매력을 충분히 느끼지는 못한다.
결국 알프스의 아름다운 자연의 도움을 받는 인스브륵, 짤쯔브륵와 같은 곳에 와서야

도시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되고,아드리아해의 푸른색 바다를 끼고 있어야 비로소 여행의 즐거움을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이곳 헝가리 부다페스트는 도시 자체가 하나의 큰 매력 덩어리로 다가온다.

비록 도시의 건물들이 아직까지 보수를 하지 못한 모습들이 많이 보이지만 부다 언덕에서

바라다 보는 페스트 지역의 근사한 모습들은 매우 인상적이다.

 

마리깃트 섬에서부터, 아름답게 보이는 국회의사당, 낭만적인 세체니다리, 엘리자베스 다리, 이슈트반 대성당,

그리고 강변을 끼고 발달된 도시의 잘 정돈된 모습은 도시의 매력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그리고 영웅광장을 보았을 땐 누구든지 "참 잘 만들었다" 라는 느낌을 받게 된다.

페스트 지역 강변에서 부다지역을 보았을 땐 누구나 경탄을 하게 된다.

겔레르트 언덕과 세체니다리와 왕궁이 있는 부다 언덕의 자연스런 조화를 이룬다.

 

특히 부다페스트가 온천이 많은 하나의 커다란 건강 센터임을 발견 했을 땐 서양인들이 가장 선호하는 도시가 왜 부다페스트인지를 알게 된다.

그 뒤로 몽고가 와서 나라를 휩쓸고 갔다.

몽고가 왔다간 뒤로 이곳 부다를 중심으로 도시가 발전하게 되고

드디어 15세기에 마차시 왕 시절 비엔나를 정복하기 까지 하면서 이 나라 전성기를 맞게 된다.

 

16세기 터키가 150년간 지배를 해오다가 기독교 세력인 합스브르크에서 헝가리를 지배하게 된다.

나폴레옹이 몰락한뒤에 비엔나 회의에서 비엔나의 동쪽은 "아시아다"라는 말에 분개한

이곳 부다페스트 사람들은 비슷한 넓이의 강을 가진 런던에서 많은 것을 배운 뒤 이곳 부다페스를 현대적인 도시로 탈바꿈 시켰다.

 

전기와 기차를 들려왔고 국회 의사당과 여러 개의 다리를 건설했으며 런던에 이어 유럽에선 2번째로 지하 철을 건설 했다.

대학교 건물 과학아카데미를 만들어서 학문을 증진시켜 역대 총 11개의 노벨상을 받게 했다.

그리고 왕궁을 확장시킨 것은 물론이며 영웅광장을 만들어서 중세유럽 최대의 도시가 되어 전성기를 맞게 되었다.

일찍이 로마인들이 살던 이 곳을 아시아 유목민들인 훈족이 무너뜨렸다.

이 나라를 건국한 유목민 마자르족은 896년에 떠돌이 생활을 청산하고 나라를 세웠다.

넓은 초원을 가진 이 곳 판노니아 대평원을 무대로 말을 자유자제로 다룰수 있었던

사람들에겐 최적의 장소였고 농사 짖기에도 너무나 훌륭한 기후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그런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아서 부다페스트가 지금까지도 다뉴브 강의 진주"라는 찬사를 받기에 충분하다.

헝가리는 공산 정권이 무너지기도 전에 동구권 국가 중 가장먼저 시장을 개방 했으며 가장 동구권에서 먼저 성공한 나라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많은 건물이 파괴되어 폐허가 되기도 했었지만 다시 재건하여

오늘날 인구 약 210만인 중부유럽 최대의 도시가 되고 있다.

 

예로부터 국내, 국제적으로도 동서와 남북의 교량적 역할을 해왔으며

엔지니어링, 자동차, 섬유, 정밀 기계 공업 등이 발달한 헝가리의 행정, 경제, 문화의 중심지이다.

현재 한국 교민은 400명 가량이며 삼성모니터 공장, 현대 ,대우 자동차 베어링 공장, 대우은행, 한화은행, LG 등

굵직한 우리나라 기업들이 다 들어와서 동구 시장 활로의 교두보 역할을 하고 있다.

 

겔레르트 언덕(Gellert-hegy)

부다왕궁 언덕의 남쪽으로 도나우강가에 있는 해발 235미터의 바위산...

전설에 따르면 이 언더에는 와인 제조 농가가 있었는데 매일 밤 마녀들이찾아와 와인을 훔쳐 갔다고 한다...

지금은 부타페스트의 아름다운 풍경을 내려다보는 전망대로 유명하지만

1900년도초에는 매춘굴과 도박장이 밀집한 슬럼가였다고 한다

지금의 지명은 헝가리인을 카톨릭으로 개종시킨 이탈리아 전도사 성겔게르트의 이름에서 유래했다고한다

언덕위에 성 겔레르트 기념상은 1904년 안코비치 쥴라의 작품이다

 

여러 갈래의 산책로를 따라 정상 까지 올라갈 수 있으며 버스 27번을 타면 쉽게 올라 갈 수 있다.

여러 세기 동안 와인을 재배 했었으나 19세기에 포도나무 뿌리 진딧물이 만연한 이후로 더 이상 포도를 재배 하지 않고 있다.

 언덕 바로 밑에서 뜨거운 온천수가 여러 군데서 솟아나와 3군데 온천을 열었다.

(겔레르트, 루다스, 레크) 19세기에 이 언덕은 레크리에이션 장소로 각광을 받았다.

 

그리고 서쪽에선 월요일 마다 시장이 열렸었다.
흥미로운 점은 이 언덕 지하에 1970년 대에 만든 물 저장소가 있는데 80만 리터의 물이 저장되어 있다.

부다페스트에는 하루 약 80만 리터의 온천이 솟아 나온다.

개장시간은 오전~09:00~17:00

입장료 무료

 

 

 

 

 

 

 

부다 왕궁이다.

현재 왕궁은 국립 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는데...

헝가리 출신 화가들이 그린 역사적인 장면을 묘사한 작품들과 헝가리를 대표하는 유명 화가들의 작품들이 소장되어 있다.

 

가운데 커다란 돔의 건축물이 성 이슈트반 대성당이다.

 

 

 

 

 

 

 

해방기념 동상

14m 높이의 여자 동상은 승리의 월계수 입을 들고 서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이것은 1945년 소련에 의해 독일로부터 해방된 것을 상징한다.

페스트 지역은 1945년 1월 18일에 해방되었고 부다 지역은 독일군의 저항 때문에 2월 13일에 해방되었다.

독일 연합이 4월 4일 헝가리 영토를 완전히 빠져나간 이 날을 1990년까지 국경일로 축하를 했다.

동상 발 밑 양 옆에 있는 기념물은 전진과 재건을 상징한다.

 

1989-1990년 정권이 교체 되면서 이 기념물을 제거 할 것인가 말 것인가

그리고 1944-45년을 해방으로 할 것인가 소련의 점령으로 할 것인가에 대한 토론을 벌였다.

결국 시의회에서 서있는 동상은 놔두고 바로 앞에 있던 소련군 모습은 제거 하기로 했다.

현재 이 기념물은 “자유의 동상”으로 이름을 바꿨다.

 

동상 발 밑 양 옆에 있는 기념물은 전진과 재건을 상징한다.

 

 

도나우강에서 바라본 겔레르트 언덕 해방기념 동상이다.

동상의 여신은 어데를 바라보고 서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