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 - 잘쯔캄머굳 - 할슈타트 (Hallstatt)
인구 1130명 고도 511m에 위치한 이곳은 경사가 아주 큰 비탈진 곳에 만들어진 마을이다.
로멘틱한 오스트리아를 소개할 때 항상 단골로 등장하는 곳이다.
깊고 검은 할슈타트 호수는 2995m 다크슈타인(Dachstein)산과
깎아 지른 듯한 주변 산들이 병풍처럼 둘러 쌓인 곳에 위치해 장관을 이루는 곳이다.
BC 3,000년 전부터 부분적으로 소금을 캐어 냈으며 BC 1,000년 전부터 유럽인들의 산업으로 발전 되었다.
그 증거로 무역로를 통해서 북쪽으로 발트해에서 남쪽으론 지중해까지 소금이 보급되었다.
근처에 있는 2000여 곳의 소금 캐던 흔적이 남아 있으며
특히 BC1,000-500년 사이엔 “할슈타트 기”라는 이름이 붙여진 흔적들로 철기 문명이 발달했던 시대였다.
지금도 짤쯔브륵 계곡에서 소금을 채취하고 있으며 소금이 녹아서 흘러내린 물을 이용한 온천들이 근처에 있다
주차장에서부터 호수가에 나있는 길을 따라 마을과 호수 그리고 주변 경관을 감상하면서 10정도 걸으면 마을에 중심부에 도착한다
경사지에 만들어진 마을이기 때문에 아주 좁은 골목들이 언덕 위에 있는 교회와 마을 집들을 연결한다.
산에서 흘러내리는 폭포는 마을의 생명수로 사용되고 있으며
오래 전부터 사용했던 방앗간이 빠르게 흐르는 물을 이용해서 아직도 돌아가고 있다.
Hallstatt 역사
할슈타트에 사람이 살았다는 가장 오래된 증거는...
약BC12,000년 전에 동굴에 사는 곰의 뼈에 구멍을 정교하게 만든 것으로 이 지역에 신석기 시대부터 살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특히 돌도끼(BC5000)는 역사이전에 소금을 캐던 증거이다.
새로 발견된 청동은 BC12,000년경에 첫 번째 소금채취에 대한 승리를 뒷받침 해주며 그것은 가장 오래된 최초의 소금광산의 탄생이다.
원시 시대에 광부는 털가죽을 이용하여 캐낸 소금조각을 운반하는 장비로 사용했다.
그 후 BC 800년경에 새로운 물질이 유럽에 도착했다. 바로 철이다.
철기 시대에 대해선 발굴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짤쯔브륵 계곡 위쪽 지역 땅속에서 철기가 많이 발굴 되었다.
BC800-BC400사이에 할슈타트 땅속에서 발굴된 독특한 철기들 때문에 할슈타트기(Hallstatt Period)라고 부른다.
그리고 이 당시 일리리아 사람들은 동쪽에서 유럽으로 들어와 정착을 했다.
그들은 가축을 기르며, 무역을 했고, 소금도 캤다.
또한 대단한 예술가들이기도 했다는 걸 발굴된 여러 가지로 알 수 있다.
BC400년경에 무자비한 켈트인들이 일리리아 인들을 공격 했다.
그래서 접근이 어려운 산속 깊은 지역에 들어가 그들의 영역을 만들었다.
그들이 새로 만든 노리쿰 왕국은 오스트리아를 형성시킨 첫 번째 국가가 되었다.
BC303년에 대규모 산사태가 그들 정착지를 덮쳤다. 때문에 그들은 “동쪽 지역”채굴을 잠시 중단했다.
채굴은 다른 지역에서 했다.
그리고 이 무렵 예수가 태어났으며 노리쿰 왕국은 로마의 일부가 되었다.
로마인들은 길을 만들고 할슈타트에 정착 했으며 전쟁에 패배한 켈트인들과 같이 로마제국 유지를 위해 소금을 계속 팠다.
6세기에 바바리아 인들이 이 지역을 차지했다.
선사시대와 로마가 관리한 이후에 3번 째로, 서기 1000년에 광산 작업에 또 다시 중요성을 부여 받았다.
아주 작은 로마네스크 교회 미카엘 성당이 12세기에 처음으로 언급되었다.
1284년 합스브르크의 대공 "알베르히트 1세"는
잘짤쯔브륵에 전망 탑을 세우고 그의 아버지 이름을 따서 루돌프의 탑(Rudolfsturm)이라 했다.
그 전망 탑은 소금 전쟁 동안 알베르히트와 짤쯔브륵의 대공 콘나드 4세가 사용했다.
알베르히트가 죽은 뒤 3년 후인 1311년 그의 미망인인 Queen Elisabeth는 Hallstatt에 소금 시장을 열수 있는 권리를 주었다.
1494년 황제 막시밀리언 1세는 할슈타트에 ‘문장’을 부여했다.
1504년 술을 주조할 수 있는 권리와 개인이 짤쯔브륵을 방문 할 수 있는 특권도 주었다.
1595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파이프 라인 건설을 시작했다.
길이가 총 40km로 할슈타트에서 에벤호수(Ebensee)까지 연결 했다.
1734년 완전하게 보존된 선사시대(약 BC300) 광부의 사체가 할슈타트 소금광산에서 발견 되었다.
오늘날 “소금 인간”이라 부른다. 1750년 화제로 인해 시장 마을 대부분은 불에 타 없어졌다.
그 후 란(Lahn)이라는 곳에 건물들을 새로 만들었다.
1840년 젊은 과학자 프리드리히 시모니(Friedrich Simony)가 이곳에서 과학적이인 高山 개발을 다크슈타인 산에 하기 시작했다.
1846년 광산 노동자들이 한 무덤을 열었는데 선조들의 도자기 파편과 뼈가 발견 되었다.
당시 광산 운영자는 이 발견의 중요성을 깨닫고 조직적인 발굴을 시작 했다.
그래서 발견 한 것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할슈타트 매장”이다.
이곳으로 오는 길을 만들기 전까지 19세기에 할슈타트로 접근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아주 험한 통로나 배를 이용하여 호수건너 오는 것이었다.
1875년 길이 생기면서 할슈타트는 새로운 시대를 열어갔다.
1876년-1878년 사이에 만들어진 루돌푸 캄머구트 철로는 엄청난 관광객을 불러 들였다.
매년 수천 명의 방문객들이 할슈타트를 찾아와 자연의 경이로움을 즐긴다.
1890년에 호수길(Seestrasse) 건설로 물 탑 위쪽에 있던 7채의 집을 허물 수 밖에 없었다.
1966년 할슈타트 로드 터널을 만들었고, 폭포가 있는 곳에 주차장도 함께 만들었다.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 및 자연 보호를 위한 국제회의에서
할슈타트-다크슈타인/잘쯔캄머구트;(Hallstatt - Dachstein/Salzkammergut) 지역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
Pfarr 교회
호수가 교회의 마당인 것 같은 모양으로 낭만적인 배치를 하고 있다.
이 우람해 보이는 건물은 15세기 후반에 만들어 졌다.
마치 한국이나 중국에서 온 것처럼 보이는 탑은 성당의 가장 독특한 면이다.
이 교회는 언던 아래쪽 호수 가에 19세기 뾰족탑을 가진 프로테스탄트 교회와 대비된다.
내부는 홀 같은 회랑이 두 개이고 각각 별 모양의 천장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런 별모양 스타일은 나중에 오스트리아 산악지방 교회들이 따라 하게 되었다.
재단은 16세기 당시 소금 무역상인이 기부한 것으로 성모마리아가 성바바라와 성캐서린 사이에 있는 모습의 그림이다.
< 가는 방법 >
1)기차 :빈 서부역(West-Bahnhof) 8번 플랫폼에서 낮에는 하루 두번(13:34, 14:34) 완행 기차가 운행 된다.
공업도시 린츠(Linz)를 지나서 '아트낭 푸크하임'(Attnang Puchheim)역에서 한번 갈아 탄다.
기차 연결 시간은 5분-10분 사이다.
샤이낙-이르트닝-할슈타트(Seinach-Irdning-Hallstatt)행 기차를 갈아타면
아름다운 잘쯔캄머쿠트의 호숫가 도시 그믄덴과 바트이슐을 거쳐서 할슈타트 호숫가 보트 역에 도착한다.
기다리는 보트를 타서 호수를 유람하고 있으면 할슈타트 역에 당도한다.
2)버스 : 잘쯔브륵 중앙역 광장에서 잘쯔캄머구트 바트이슐(Bad Ischl)로 가는 버스에 오른다.
바트이슐에서 다시 할슈타트/오버트라운(Obertraun)행 버스를 타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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