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건축물/♣----이탈리아

바티칸 시국(vatican)-로마

이종국 2012. 10. 11. 12:55

 

바티칸 시국(vatican)-로마

 

이탈리아의 수도인 로마 안에는 바티칸이라는 또 하나의 국가가 있다.

세상에서 가장 작은 독립국으로 잘 알려져 있는 이 곳은 전세계 카톨릭의 총 본산이라는 성스러운 의미 외에도

미켈란젤로의 불굴의 명작인 "천지창조"와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

책에서만 볼 수 있었던 훌륭한 예술작품들을 직접 감상할 수 있는 이탈리아 미술의 보고이기도 하다.

바티칸 시티는 이탈리아 로마 시내 테베강 서안에 자리잡고 있다.

 

한번에 30만명을 수용할 수 있는 성 베드로 광장 앞에는 흰색 선이 도로 위에 그어져 있다.

그것이 바로 이탈리아와 바티칸을 구분짓는 국경이다.

바티칸은 이탈리아가 19세기 들어 근대통일국가로 탈바꿈하면서 교황청 직속 교황령으로서의 지위를 상실하게 되었다.

 

 

이후 1929년 이탈리아와 교황청 주변의 지역에 대해 주권을 인정하는

라테라노조약을 체결함으로써 영토 0.44㎢의 세계에서 가장 조그만 독립국이 되었다.

현재 바티칸의 영토권은 성베드로 대성당과 로마에 있는 성당과 궁전을 포함한 13개 건물이있다.

로마 동남쪽 120km지점에 있는 카스텔 간돌포(Castel Gandolfo)의 교황 하계 관저에 국한된다.

영토 내에는 성 베드로 광장, 대성당, 교황궁전, 관청, 미술관, 도서관, 은행, 방송국, 인쇄국, 철도역, 우체국, 시장 등이 있다.

 

산피에트로 광장(Piazza San Pietro)

 

산 피에트로 광장을 하늘에서 내려다 보면 회랑과 연결된 바티칸의 건축물이 마치 천국의 열쇠 처럼보인다.

맨위 첫사진을 보면 대성당의 쿠풀러 위에서 바라보면 두팔을 벌려서 광장에 있는 모든 사람을 감싸 안는것 처럼 보인다

 

 

 

 

산피에트로 광장(Piazza San Pietro)

 

산피에트로 광장이라고도 한다.

이탈리아 바로크양식의 거장인 화가·조각가 베르니니가 1656년 설계해, 12년 만인 1667년 완공하였다.

  입구에서 좌우로 안정된 타원꼴이며, 가운데서 반원씩 갈라져 대칭을 이룬다.

좌우 너비는 240m이다. 정면 끝은 산피에트로대성당(성베드로대성당)의 입구에 해당한다.

반원형인 광장 좌우에는 4열의 그리스 건축양식인

도리스양식 원주 284개와 각주 88개가 회랑 위의 테라스를 떠받치고 있다.

 

 

테라스 위에는 140명의 대리석 성인상이 조각되어 있다.

회랑은 예수 그리스도가 인류를 향해 팔을 벌리고 있는 모습을 형상화하였다.

광장 중앙에는 로마의 3대 황제 칼리굴라가 자신의 경기장을 장식하기 위해 40년 이집트에서 가져온 오벨리스크가 우뚝 서 있다.

 

이 오벨리스크는 로마로 옮겨진 뒤 경기장에 세워졌으나,

 후에 경기장에서 죽은 순교자들을 기념하기 위해 1586년 지금의 위치로 옮겨졌다.

뒤에 오벨리스크 꼭대기에 알렉산데르 7세 가문의 문장과 십자가가 장식되었는데...,

 이집트 사람들에게는 약탈 문화재를 대표하는 상징물로 인식될 만큼 많은 굴곡을 겪은 건축물이다.

높이는 25.5m, 무게는 320t이다.

오벨리스크 좌우에는 마데르나와 폰타나가 각각 만든 2개의 아름다운 분수가 있다.

베드로가 순교한 곳으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광장이자, 베르니니의 대표적인 걸작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산피에트로 대성당(St. Peter's Basilica )

 

성베드로대성당이라고도 한다.

가톨릭의 총본산으로서 유럽 역사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교황청의 산피에트로대성당 관리 성성(聖省)의 관리하에 있다.

그 역사는 깊어서 기원으로 말하면 성베드로의 무덤 위에 세워진 4세기의 바실리카식 성당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6세기 미켈란젤로를 비롯한 당시의 대표적 건축가들에 의해 전성기를 맞은 르네상스의 건축이념에 바탕을 두고 재건되었다.

15세기에 한 번 시도되었다가 중단되었던 구당의 개수계획을 재개하기 위해

1506년 교황 율리오 2세가 저명한 건축가 D.브라만테에게 명하여 본격적인 공사에 착수하게 하였다.

브라만테는 그리스 십자식플랜의 중심에 대원개를 얹고,

네 구석에 한 개씩의 작은 원개를 얹는 구상을 세운 듯, 대원개를 떠받칠 4개의 큰 지주와 그것들을 잇는 4쌍의 아치를 완성하였다.

그가 죽은 뒤 라파엘로가 여기에 긴 회당부를 추가한 라틴 십자식 플랜을 계획하였으나

그도 얼마 되지 않아 세상을 뜨고 공사는 바르다살레 베르레의 손을 거쳐 A.P.da 상갈로에게로 넘어갔다.

그도 또한 궁륭의 일부를 착수하였다가 1546년에 세상을 떴으나,

그동안 역대의 건축담당자들이 이 조영사업에 기울인 정열은 건물의 계획을 놀랍도록 변경시켰다.

 

1546년 교황 바오로 3세는 마침내 71세의 미켈란젤로에게 공사의 전권을 맡겼다.

그는 그리스 십자식 플랜을 채용함으로써 브라만테의 안(案)으로 돌아가는 듯하였으나,

브라만테의 그것과는 달리 네 구석의 작은 원개를 없애고

건물 전체의 긴밀한 조형성과 다이내믹한 공간을 대원개를 중심으로 유기적으로 통일한다는 탁월한 구상을 생각해내었다.

 

일체의 보수를 사양하고 오직 신에 대한 사랑과 사도 베드로에 대한 존경에서

 이 조영사업에 몸바친 그는 1564년 그의 생애를 마칠 때까지 대원개의 기부에 해당하는 탕부르의 공사에 심혈을 기울였다.
직경 42.4m, 바닥에서 탑 십자가까지의 높이가 약 133m에 달하는 이 원개 공사는 그가 남긴 목제의 모형과 함께

1588년 자코모 델라 볼타에게 인계되었고, 다시 도메니코 폰타나의 손으로 넘어가 1590년 마침내 완성되었다.

건물 전체의 역동감을 그 아름답고 힘찬 곡선에 모았다가 허공에 해방시키는 듯한 이 훌륭한 원개는

그러나, 17세기 초기 신랑의 전면 연장과 정면 가득히 펼친 칸막이와 같은 파치아타(서쪽 정면)의 증축으로 인해 그 효과가 크게 손상되었다.

헌당식은 1622년에 거행되었고, 마침내 명장 G.L.베르니니가 나타나,

1655년에서 1667년에 걸쳐 원주회랑으로 에워싸인 훌륭한 정면 광장을 완성시켰다.

투시효과를 교묘히 이용한 이 훌륭한 광장은 가톨릭의 총본산에 어울리는 규모와 성격을 나타낼 뿐만 아니라,

C.마데르나에 의해 정면구성으로 손상된 대성당의 모습을 살리는 역할을 하고 있다.

 

 강복의 발코니

 

이층 정중앙의 발코니에  매년 1월 1일과 큰 행사가 있는날 교황의 모습을 볼수 있는 장소이다.

교황은  전 세계인에게 축복을 내리고 메세지를 전달하는 발코니이다.

발코니 바로 아래에는 천국의 열쇠(교황의 고유하고 신선한 권한을 상징)를 받는 성베드로의 부조가 새겨져 있다.

 

 

 

 

 

 

스위스 근위병

산 피에르트 광장 주변에서 교황청을 지켜주는 키큰 스위스 근위병을 볼 수 있다.

1527년 신성로마제국의 침략 때 목숨을 바쳐 교황 클레멘스 7세를 지켜내준 이후 부터이다.

스위스 출신의 카돌릭교도만이 바티칸의 근위병으로 선출되었다 한다.

화려한 제복은 미켈란젤로가 디자인 했다는 설이 있다.

 

 

 

 

 

 

 

 

 

성 베드로 광장 앞에는 흰색 선이 도로 위에 그어져 있다.

이것이 바로 이탈리아와 바티칸을 구분짓는 국경이다.

 

 

  

 

 

 

발다키노

 

교황의 제단으로 이곳에서는 오직 교황만이 미사를 집전할 수 있다.

우르바노 8세가 베르니니에게 주문하여 11년만에 완성했다.

제단 전체가 천사 4명에 의해 하늘을 오르는 듯한 모습이다.

중간 중간에 우르바미누수 8세의 가문 바르베리니의 상징인 꿀벌을 새겨 놓았다.

 

높이 29m 무게 37t의 청동 조형물로 판테온에 붙어있던 청동판을 뜯어 만들어  엄청난 비난을 받었다고 한다.

그런데 뜯어낸 청동만의 대부분은 로마에서 대포를 만드는데 썻고 여기에는 극히 일부분만 사용했다고 한다.

 

베르니니의 단독 작품으로 알고 있는 사람이 많지만 사실 그는 설계만 했다고 한다.

실질적 작업의 그의 제자이자 그와 함께 바로크 최고의 천재로 불렸고 평생 그와 앙숙 관계인 보로미니가 완성했다.

발디키노의 화려한 희돌림 표현은 보로미니가 즐겨 사용한 그만의 독창적인 기법이었다.

 

 

 

 

 

 

 

 

 

쿠풀러(La Cupoia)

 미켈란 젤로가 설계를 했으나 그가 죽은 후 제자들이 완성을 했다.

16개의 창문에 내부높이는 136m 지름 42.7m의 돔이다.

돔이 500년을 굳건히 견디다는것은 판테온과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는 완벽한 설계라고 할수 있다.

 

89세의 나이로 죽기직전까지 천재성을 유감없이 발휘한 미켈란젤로는 건축의 백미가 아닐수 없다.

바티칸이 멀리 로마까지 보이니 날씨가 좋은날에는 반드시 올라가 보자(엘리베이터나 계단이용 유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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