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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하 성(Prazsky Hrad)-프라하-체코

이종국 2012. 11. 26. 17:11

 

프라하 성(Prazsky Hrad)  

 

천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프라하 성은 놀랍도록 많은 이야기와 많은 문화 유산을 간직하고 있다.

최초의 왕가인 프레미슬리드에서 부터 룩셈부르크, 합스브륵에 이르는 동안 많은 변화를 거쳐 지금의 모습까지 오게 되었다.

 

9세기 (870)경에 건축되기 시작한 길이 570m인 프라하 성은 현존하는 전 세계의 중세 성 중에 가장 큰 규모이다.
언제나 돈에서 권력과 문화가 나오듯이 당시도 마찬가지 였다.

인근 '쿠드나 호라'라 있는 은(silver)광에서 캐낸 '은'은 유럽전체 통용되는 은의 1/3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프라하 성 정문

 당시 유럽에서 가장 안정된 통화인 '프라하 그로쉔' 을 발행할 만큼 보헤미아가

강국으로 올라서는데 최고 역할을 했던 은혜에 힘입어 14세기 룩셈부르크 가의 카를 4세(1346 ∼ 78년 재위)가

신성로마제국의 황제가 되면서 자신의 거처를 프라하로 정하고

지금의 구시가지에 해당하는 도시를 새롭게 하면서 성의 위용도 달라 지기 시작한다.

 

왕궁을 재건하고 성 비투스의 성당을 건축하기 시작하면서 이 곳은 보헤미아 왕국의 상징물이 되었다.

15세기 말 폴란드 야기엘로 왕가 출신이면서

왕으로 선출된 블라디슬라프 2세 때 지금의 구왕궁 건물이 후기 고딕 양식으로 만들어 진다.

 

1526년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가가 보헤미아를 지배 했을 때부터 르네상스적인 건축이 들어서게 되었다.

프라하 성의 건축 양식의 완결은 바로크시대에 이루어졌다.

1753년 ∼1775년 사이에 외관은 현재와 같이 결정되었다.

 

 

 

 

 

 

 

 

 

 

 

 

 

제 1차세계대전이 오스트리아 헝가리 2중 제국이 붕괴되고

체코슬로바키아가 탄생 된1918년부터 대통령의 관저로 사용하기 시작 했다.

그리고 성의 내부장식과 정원이 새로 정비되었다.

프라하 성은 수많은 건물들이 모여 하나의 타운을 이루고 있는데 중심 건물은 성 비투스 성당이다.

 

카를 4세 때 부터 짓기 시작한 성 비투스 성당은

50년 이상에 걸친 신 고딕양식(1873 ∼ 1929)부분을 첨가 함으로써 약 6백년의 공사기간을 기록하며 완성되었다.

내부에 있는 스테인드 글라스가 뛰어나다.

그 중에서 체코의 아르누보 화가 '알폰소무하'의 1936년 작품은 매우 인상적이다.

 

 

성 정문 앞에서는 매시 정각에 근위병들의 형편없는(우리나라에 비하면) 교대식이 행해진다.

그리고 프라하 최고의 거리의 악사가 나와 스메타니의 아름다운 선률을 들려준다.

 

 

 

 

 

 

프라하성 - 성 비투스 성당

 

프라하 시내 어디에서도 보이는 이 성당은 프라하 성의 중앙에 있다.

프라하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당 중 하나로 비엔나에 있는 슈테판성당의 모델이 된 건물이기도 하다.

 

1344년 카를 4세에 의해 짓기 시작하여 1929년에 완성된 긴 역사를 자랑한다.

로마네스크 성당 터에 고딕양식으로 만들며서 바로크 첨탑이 가미된 복합양식 건물이다.

처음 설계를 맡았던 건축가는 프랑스 인 메티유 였다.

공사 도중 메티유가 죽자 슈바벤 출신 건축가 피터 파를러가 인계 받았다.

 

당시 나이는 23세 였다.

결국 파를러도 이 성당을 완공하지 못해 그의 아들에까지 작업이 이어졌다.

후스전쟁 때 작업이 중단되다가 16세기 중엽 첨탑 부분을...

르네상스식으로 올렸고 그 후 100년 뒤 양파모양의 바로크 첨탑을 가미한 건축이 되었다.

시간이 흘러 19세기 20세기 건축가와 미술가들에 의해 마침내 완성 되었다.

 

 

 

 

 현관 출입구 부분의 첨두형 아취(포인티드 아취)의 디테일...

 

첨탑과 플라잉 버트래스...

 

성당 내부의 클라스더 피어의 리브가 자아내는 특수분위기와 축소된 벽면적으로인해고측광및 벽면과 외부의 여벽에다 부조로만 장식 되었다

성당 외부의 장식은 현관 정면의 첨두형 아취에 조각하여 붙였고 중층에 성상을 끼워 세웠다

 

오벨리스크(obelisk)

 

한자루의 석재로 된 탑으로 왕권을 상징하기 위해 건립된 탑 고대 이집트 건축부터 시작되었다.

전사각형 기단위에 사각주 탑신을 두고 중간부분을 약간 볼록하게 하였었다

탑신에는 왕권 찬양.태양송가.전승송가.전승축가.건립상황등을 음각으로 표현한 오벨리스크이다.

 

 

첨탑으로 수직성을 강조  

성당내부에서 수평적 분절을 억제하고 수직적 분절을 강조하여 하늘을 향한 종교적 신념과 사상을 표현하였다.

 

 

 

현관 출입구 부분의 첨두형 아취(포인티드 아취)의 디테일...

 

 

장미창(rose window)

 차륜창(wheel window)이라고도 하며 성당입구위에 거대하고 아름다운 원형창을 가르킨다.

(프랑스 고딕성당들의 특징이다)

 

 

 

첨탑과 플라잉 버트래스의 극치라고 할까...

르네상스 운동이 발생하기까지

서유럽이나 동유럽 전역에 전파된 건축양식으로 고딕양식은 종교 건축역사상 최고의 건축을 이룬다

 

가장 먼저 성당 출입구 위쪽 장미의 창

 

이 성당의 특징은 화려한 스테인드 글라스와 성왕 바츨라프의 무덤이다.

 교회의 내부는 안쪽 길이 64m, 폭 46m, 높이 46m나 된다.

이 곳에선 천년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최고 미술품들을 감상 할 수 있다.

가장 먼저 성당 출입구 위쪽 장미의 창이 보인다.

천지창조의 이야기가 묘사되어 있다.

(**그런데 직접 눈으로 보기에는 묘사된 것을 구별 할 수 없다.

성당의 스테인드 글라스는 작은 망원경을 이용해야 잘 보인다.)

 

 

 이 성당의 특징은 화려한 스테인드 글라스와 성왕 바츨라프의 무덤이다.

교회의 내부는 안쪽 길이 64m, 폭 46m, 높이 46m나 된다.

이 곳에선 천년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최고 미술품들을 감상 할 수 있다.

가장 먼저 성당 출입구 위쪽 장미의 창이 보인다.

천지창조의 이야기가 묘사되어 있다.

(**그런데 직접 눈으로 보기에는 묘사된 것을 구별 할 수 없다.

성당의 스테인드 글라스는 작은 망원경을 이용해야 잘 보인다.)

 

바츨라프 예배당

 성당 중앙 오른 쪽에는 성왕 바츨라프 무덤이 있다.

고결한 군주로서 살다 929년 그의 형

볼레슬라프의 사주를 받은 자객들에게 암살 당했는데 사자 입을 한 문고리에 매달려서 죽었다.

그의 무덤에서 기적이 일어났다는 소문에 놀란 이 암살자는 932년 그의 유해를 이 성당으로 옮겨왔다.

 

그리고 바츨라프가 죽을 당시 사자 문고리가 있는 문도 가져다 놓았다.

바츨라프 1세는 암살 직후부터 보헤미안의 수호성인으로 추앙 받았으며 성 비트스 성당은 오랫동안 순례지가 되었다.

이곳 내부 벽은 빛나는 보석들과 화려한 금도금으로 장식되어 있고

성서의 여러 장면을 담은 고딕 벽화가 벽면에 그려져 있다.

장식 하나하나가 모두 미술 작품이다.

 

성 존 네푸묵크 무덤

 

성당 중간을 넘어서면 부속 예배당들이 나온다. 이곳은 입장료를 내서 들어가는 곳이다.

이곳에선 종교유물에서부터 르네상스 화가들의 작품에서 현대 조각에 이르는 다양한 미술 품을 볼 수 있다.

특히 물에 빠진 자들의 수호 성인인 “성 존 네푸무크” 의 은으로 된 18세기 무덤은 사람의 눈높이에 설치하였다.

이곳을 지나가면서 사람들이 한번씩 손으로 만지며 소원을 빈다.

 

고딕성당 내부의 본질적인 공간구성으로 수평과 수직의 2방향성 조화와 통일성을 추구하였다.

 

#.트레이서리(tracery)

    첨두형 아취의 내부 창의 모습을 장식하였는데...특히 독특한 장식적 수법이 발휘된 트레이서이다..

 

#.멀리온(mullion)

    트리포리움(triforium)으; 첨두형 아취는 몇개의 아취형상으로 분절되는데 그때 수직기둥 형상의 부재를 멀리온이 한다.

 

#. 장미창(rose window)

    차륜창(wheel window)이라고도 하며. 성당입구위에 거대하고 아름다운 원형창을 가르킨다

    (프랑스 고딕성당들의 특징이다)

 

 

 

 

 

 

알폰소 무하의 창

 

보헤미아 특유의 푸르고 붉은 유리공예의

환상적인 색채와 형체는 세계최고의 유리공에 수준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20세기 체코를 대표하는 아르누보 화가가 만든

“알폰소 무하”의 창은 가장 독특하면서 환상적인 작품으로 평가 되고 있다.

그리이스 살로니카 출신 형제 이면서 모라비아에

 기독교를 소개한 "성 치릴"과 "성 메소두스"의 일대기를 묘사한 작품이다.

복잡한 모습의 스텐인드 글라스가 아닌 그림처럼 만든 것으로 색채가 환상적이다.

 

 

 

 

 

 

 

장미창(rose window)

 차륜창(wheel window)이라고도 하며 성당입구위에 거대하고 아름다운 원형창을 가르킨다.

(프랑스 고딕성당들의 특징이다)

 

 

 

 

 

황금소로(The Golden Lane)   

 

성벽에 붙박이로 만들어진 작은 집들은 16세기 후반에 프라하 성을 지키는 24명의 군인들 막사로 사용되었다.

17세기, 합스브륵의 루돌프 2세 때 왕실에 필요한 물건을 만들기 위해 금.은 세공사, 성의 일꾼들이 살았다.

 

그 뒤 유럽 각지에서 이곳은 돌을 금으로 만드는

연금술사들이 산다는 소문이 돌아 황금소로(골든레인)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다.

실제로 연금술사들은 비투스 성당과 화약탑 사이에 나있는 골목에 연구소를 가지고 있었다.

 

입구에서 입장료(40크라운 : 1Euro가 약간 넘는 금액)를 내고 들어간다.

2층은 중세시대의 무기들을 전시해놓은 곳이다.

1층은 각종 기념품과 정겨운 물건들을 파는 선물가게들로 들어서 있다.

그리고 1층의 모든 건물은 입구는 몸을 구부리지 않으면 들어갈 수 없을 정도로 작은 집이 대부분이다.

 

 

 

 22번지 는 프란츠 카프카가 잠시 있었던 곳이다.

  

  

 

 프란츠 프란츠 카프카

 22번지 는 프란츠 카프카가 잠시 있었던 곳이다.

벽면에 쇠로 카프카의 이름이 새겨진 이곳은

프란츠 카프카의 막내 누이 오트라(Ottla)가 오빠 카프카를 위한 공간을 마련한 곳이다.

1916년 11월부터 1917년 5월까지 카프카는

하루종일 일을 하고 밤늦게 구시가지에 있는 자신의 숙소로 돌아가는 하는 생활을 했다.

그의 작품 城"castle"은 바로 프라하 성을 주제로한 작품이며 많은 단편도 이곳에서 집필했다.

 키다리였던 카프카는 "살기에 불편하긴 해도 나에게 알맞은 집"이라고 했다고 한다.

22번지에서 카프카에 관한 거의 모든 것들을 구할 수 있다.

 

 

 

 

 

 그 중 19번지는 전 바츨라프 하벨 대통령 부인이 세운 "올가 재단"에서 경영하는 선물가게이다.

 

 

2층으로 올라가는 나선형계단  연금술사들이 사용했을 정도의 작은 나선형계단이다.

 

 

 

 

 

 

프라하성 - 구 왕궁

비투스 성당과 다리로 연결된 건물 부분이 황궁이다.

11세기 처음 요세화 될 때부터 이곳은 보헤미아 왕자들의 거처로 사용되었다.

건물은 3층으로 만들어졌다.

1135년경 처음 만들어진 로마네스크 건물은 지금의 지하층이다.

그 위에 프레미슬리드 집안 오타카르 2세(Otkar II)와 카를 4세가 자신들의 궁전을 증축했다.

 

 프라하성 - 성 조지 바실리카

 

10세기 브라티슬라브 왕자가 건립한 이 교회는

비투스 성당보다 시기적으로 앞서며, 로마네스크 교회의 모습을 가장 잘 보존하고있다.

인접 건물인 보헤미아 최초의 수도원이 10세기에 지어질 때 교회를 증축 했으며 12세기에 일어난 화재 이후 개축하였다.

개축 이후에도 흰색 쌍둥이 탑과 소박한 내부가 잘 복원되어 원래의 보습을 잘 볼 수 있다.

그러나 붉은색 건물 정면은 17세기에 바로크 양식으로 만들었다.

 

 

 

 

 

 

 

 

 

 

 

브라티슬라브 홀  

15세기 폴란드의 브라티슬라브 야기엘로(Vladislav Jagiello)를 위해서

지어진 꼭대기 층에는 장대한 브라티슬라브 홀이 있다.

한 때 이곳에서 마상 창 시합을 했었기 때문에

들어오는 계단은 말 탄 기수들이 올라 올 수 있도록 경시가 완만하게 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