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유럽 건축물/♣--------체코

구 시가지-구 시청광장 -프라하-체코

이종국 2014. 3. 3. 12:00

 

구 시가지-구 시청광장 -프라하-체코

 

체코는 지리적으로 꽤 다양한 편이다.

서쪽의 체히 지방에는 엘베 강과 블타바 강이 흐르는 분지 지역이 낮은 산릉으로 둘러싸여있다.

 

1945년에는 나치 독일에 의해 광장 앞의 구 시청사가 크게 훼손되었다.

1948년에는 킨스키 궁전 발코니에서 공산당 정권이 선언되었고,

 

1968년 8월에는 그 유명한 "프라하의 봄" 이후 바르샤바 조약군과 소련군대가 탱크를 앞세우고 점령을 하였다.
그리스도의 12사도가 시간을 알려주는 천문시계가 있는 구 시청 사, 종교개혁 당시 후스파가 모이던 틴 교회가 있다.

 

틴 성당 건너편엔 킨스키 백작이 살던 골즈킨스키 궁전이 있다.

분홍색과 흰색을 사용한 화려한 로코코 외관을 가진 건물은...

국립미술관의 부속건물로 현대미술을 전시하고 있으며 프란츠 카프카 기념관으로 사용되고 있기도 하다.

 

이 곳에서는 로마네스크 양식에서 아르누보 양식까지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다.

광장 주변에는 크리스탈 가게가 즐비하고,

광장 안에선 기념 음악회와, 거리의 악사들의 연주 등 다채롭고 재미있는 행사가 벌어진다.

12세기부터 생긴 이후 많은 역사적 사건의 증거들을 간직하고 있다.

 

바로크의 니콜라스 성당이 있으며 로코코의 킨스키 궁전엔 국립 그래픽을 전시관이 있다.

돌로 된 종이 있는 집은 14세기 프라하 시의 궁전이었다.

지금은 시립 전시관, 콘서트 홀이 있어 매년 프라하 봄 페스티벌 때 연주가 있다.

 

틴 성당

 

Church of Our Lady before Tyn (Tynsky chram)틴 앞에 성모 마리아 성당.  

동화 속에서 나올 것 같은 이 유서 깊은 교회의 장엄한 쌍둥이 첨탑은 구 시청 광장을 더욱 아릅답게 만들고 있다.

 

비투스 성당 다음으로 프라하에서 가장 뒤어난 외관을 가지고 있는 고딕 성당은 14세기에서 16세기 까지 만들었다.

80m 높이의 첨탑을 가지고 있고 내부는 바로크 양식으로 장식되어 있다.

 

15세기 초반부터 1620년까지 이곳은 프라하의 주요 후스 파 교회였다.

당시엔 성배모양 금동장식을 정면 윗부분에 했었지만

후스파와의 전쟁에서 오스트리아 황제군인이 이긴 이후에 성배를 녹여 성모마리아 상을 만들어 놓았다.

 

체코의 대부분 지역은 습기 많은 대륙성 기후이므로 여름엔 따뜻하고 비가 많으며, 겨울엔 춥고 눈이 많다.

완만한 기온 변화를 보인다.

가장 더운 달은 7월이고, 가장 추운 달은 1월이다.

 

12월에서 2월까지는 저지대도 영하로 떨어지고 산악지방은 정도가 더 심하다.

사실상 '건기'라는 것은 없다.

겨울에는 40에서 100일정도 눈이 내리고(산간지방은 130일 정도), 저지대는 안개까지 낀다.

 

구 시청사와 천문 시계탑-프라하-체코

 

1388년 시민권을 위해 건물을 만들었고, 1410년 시계탑이 세워졌다.

1470년 시청은 고딕 스타일로 만들어 졌다.

지금보다 큰 건물이었던 시청사는...

1945년 5월 소련군이 프라하에 입성하기 수일 전에 나치의 폭격을 받아 부속 예배당과 북쪽 건물 상당부분이 사라졌다.

그 후 지금까지 빈터로 남아있다.

 

 구시청의 천문시계

인생을 이야기해주는 짧고도 강력한 쇼

 

프라하에 간 모든 사람들이 절대 놓치지 않고 보는 1위를 꼽자면 구시청의 천문시계를 들 수 있을 것이다.

매 시마다 20초간 진행되는 시계의 쇼를 보기 위해 늘 사람이 구름처럼 몰려 있다.

정교하게 제작된 이 짧은 쇼는 인생의 중요한 교훈을 던져준다.

 

정각이 되면 죽음을 상징하는 해골인형이 움직이며 종을 친다.

두 개의 창문에서는 12사도가 등장한다.

허영을 상징하는 거울을 보는 자...

돈지갑을 움켜쥔 유태인...

음악을 연주하는 터키인도 등장하여

죽음 앞에 이 모든 것이 소용없음을 극적으로 보여준다.

 

유태인이었던 카프카는 어린 시절 이 시계속의 탐욕스러운 유태인을 보며 마음에 상처를 입기도 했다고 한다.

이 시계에는 끔찍한 전설이 있다.

1490년 천문학자 하누스(Hanus)가 이 시계를 만들었을 때,

시계의 정교함과 아름다움에 찬탄한 다른 나라와 도시에서도 같은 시계를 만들어달라는 주문이 쇄도했다고 한다.

 

 이에 프라하 시의회는 다른 시계를 만들지 못하도록 그를 장님으로 만들었다.

장님이 된 하누스는 자신의 걸작인 시계를 다시 만져보고 싶어했고,

그가 만지자 시계가 멈추더니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고 한다.

 

400년 이상 아무리 수리하려 해도 움직이지 않던 시계가 움직인 것은 1860년부터였다고.

사실 이 이야기는 1552년 시계를 수리하던 장인의 실수로 시계 제작자 이름이 잘못 기재되면서 생긴 이야기라고 한다.

실제  제작한 사람은 천문학자이자 수학자, 까를대의 교수였던

얀 신달(Jan Sindal)과 시계장인인 미쿨라슈(Mikulas)이고 만든 해는 1410년이라고 하는데,

과연 시의회가 장님으로 만든 것이 그들인지, 그런 일이 있기는 했는지는 밝혀진 바 없다

 

구 시청사를 유명하게 만드는 것은 남쪽에 설치된 천문시계이다.

 프라하의 명물 천문시계는 15세기 프라하 대학의 수학교수였던 하누슈에 의해 만들어졌다.

그런데 독창적이면서 아름다운 시계에 대한 소문이 유럽 각 국으로 퍼지면서 다른 나라에서도 주문이 있었다.
그러자 이 시계를 독점하고 싶은 프라하에서는

하누슈가 두 번 다시 시계를 만들지 못하게 하기 위해 그를 장님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그 후 하누슈가 시계탑 위에 올라가 시계에 손을 댔을 때 시계 바늘은 그대로 멈추어 400년 동안 움직이지 않았다고 한다

(믿거나 말거나).

그 후 1860년 수리를 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1410년에 제작된 시계탑의 천문시계는 위아래 두 개의 원으로 천동설에 입각한 우주관을 보여준다.

 

 

 

 

 

 

 

 

 위쪽 원은 ‘칼렌다륨’이라 하여 해와 달 전체의 움직임을 묘사한 것으로 1년에 한 바퀴를 돌며 년•월•일•시간을 나타낸다.

 

 아래쪽에 있는 원은 ‘플라네타륨’인데 이것은 12개의 계절별 장면을 묘사한 것으로 보헤미안의 농경생활과 관련이 있다.

천문시계 한 가운데에는 푸른 지구가 있다. 3개의 시계 바늘 축은 지구의 중심으로서 프라하를 가리키고 있다.
3개의 시계바늘은 각기 바늘 끝에 달려있는 태양•달•별 모양이 암시하듯...

태양시간•달 시간•황도 대를 각각 가리키고 있으며, 맨 외부 24아라비아 숫자는 고대 보헤미아 시간을 나타낸다.

 

다음 안쪽 두 쌍의 12로마숫자는 중부유럽의

낮•밤 시간을, 맨 안쪽(푸른색)의 12아라비아 숫자는 일출-일몰 시까지의

낮 시간을 나타내고 있다.

위의 푸른색은 하늘을, 밑의 갈색은 땅을 나타내며, 갈색 안의 검은 색은 여명의 시간을 나타낸다.

매시 정각 천문시계 옆에 있는 해골인형(죽음을 상징)이 모래시계를 거꾸로 뒤집어서 손으로 줄을 잡아당겨 종을 치면,

그 위 두 개의 창문에 열리면서 그리스도 11제자인형이 차례로 나타난다.(베드로는 가운데 있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다)

 

이 때 천문시계 왼쪽에 있는 거울을 보는 자(허영을 상징)와 돈지갑을 유태인 고리대금업자(부를 상징)이 같이 움직이고,

그리고 오른쪽의 음악을 연주하는 터키인(나태)이 있다.

 

천문시계는 "여명의 시간이 다가오면 허영과 부도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매시마다 알리고 있다.

시간과 우주의 법칙은 한치 오차도 없이 지금 이 시각에도 운행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기라도 하듯,

 

좌측에는 철학자와 천사가, 우측에는 천문학자와 연대기 편자인형이 말없이 서있다.

마지막에는 시계의 가장 위쪽에 닭이 나타나서 우는 것으로 끝이 난다.

매시 정각이 되면 많은 사람들이 카메라, 비디오를 들고 광경을 지켜보기 위해 장사진을 이룬다.

그러나 기다린 시간보다 시간을 알리는 공연(?)이 너무 짧기(10초 정도) 때문에 허탈감이 없지 않다.

그리고 이런 많은 사람들이 한 방향으로 시선을 집중하는 것을 놓칠세라,

시계탑 바로 아래서 광고판을 들고있는 광고맨들이 목 빠지게 정각을 기다리는 사람들을 향해서 광고하는 풍경이 이색적이다.

 

 시청사건물 르네상스식(正圓 아치) 창문 위에는

"프라하, 왕국의 수도"(Prague, Capital of the Kingdom)라는"Praha. Caput. Regni"라는 글이 새겨져 있다.

건물 안에는 작은 예배당이 있는데

프라하 시민들이 결혼식장으로 이용 하기도 하고 저녁에 모차르트의 돈지오반니 인형 오페라 공연도 한다.

 

저위 두 개의 창문에 열리면서 그리스도 11제자인형이 차례로 나타난다.

(베드로는 가운데 있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다)

 

 

 

 

 

 

 

 

 

매시 정각 천문시계 옆에 있는 해골인형(죽음을 상징)이 모래시계를 거꾸로 뒤집어서 손으로 줄을 잡아당겨 종을 친다.

 

 좌측에는 철학자와 천사가...

 

우측에는 천문학자와 연대기 편자인형이 말없이 서있다.

 

 

 

 

얀 후스 동상

 

 이 동상은 순교 500주년을 맞이하여 1915년에 세워진 것이다.

얀 후스는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카를 대학 총장을 역임하였다.

당시 모라비아 지역을 토지 80%가 성직자들의 손에 있었고, 많은 부정부패를 저지르면서 부를 축척해 나갔다.

 

영국 위클리프의 영향을 받은 얀 후스는 이것을 보다 못해 기독교 개혁을 외쳤다.

“하느님의 말씀은 성경 속에 있는 것이지 교황의 입 속에 있지 않다.”

재산을 농민들에게 돌려주라고 비판하다가 교황 요한 23세에게 파문 당하고 콘스탄트 공회정에 소환되었다.

콘스탄트 공회정은 후스에게 잘못했다고 인정하면 풀어주겠다고 했지만 후스는 거절했다.

그 뒤 화형을 선고 받고 프라하 구 시청에서 화형을 당한 체코의 신학자였다.

이 사건을 계기로 농민들이 일어나 기독교 군대와 전쟁을 하게 되었다.

 

형편없는 무기로 무장한 농민들은 7차 십자군 원정까지 갔던 십자군들을 이기며 승승 장구를 했다.

그러나 합스부르크 군대에게 응원을 요청하여 전쟁을 하게 된다.

결국 프라하 역사에 가장 중요한 전환점인 "하얀산(비호호라)전투"에서 오스트리아 황제 군에게 패배한다.

그 결과 후스파 개혁 지도자 27명이1621년 6월 21일 이 광장에서 단두대에 처형 당했다.

그 것을 기념하기 위해 시청사 건물 바로 옆 바닥에 27개의 하얀색 십자가를 표시해 두었다.

 

그리고 얀 후스 동상 대좌에는 "진실을 사랑하고, 진실을 이야기하고, 진실을 지켜라" 라고 새겨져 있다
내부엔 덴마크 천문학자 티코브라헤(1546-1601)가 잠들어 있다.

 

 

 

 

 성 니콜라스 교회,

 

오른쪽으로 파리거리가 있다.

12세기부터 이곳에 교회가 있었다.

14세기 틴 교회가 있기 전까지는 구시가지 교구 교회이자 회합장소였다.

배산 전투 이후에 베네딕트 수도원의 일부가 되었었다.

 

지금의 모습은 18세기(1735)에 완공된 바로크 양식의 건물이다.

18세기말(1781) 합스브르크의 마리아 테레지아의 아들인

황제 요세프 2세는 사회적으로 유용한 활동을 하지 않는 수도원은 모두 폐쇄할 것을 명령하자 급속히 황폐해 졌다.

1차 세계 대전 당시엔 프라하의 주둔군의 부대로 쓰였다.

당시 주둔군의 대령은 예술가들을 차출하여 이 교회를 복원 했다.

 

본당 회중석에는 왕관 모양의 아주 큰 샹들리에가 있다.

전쟁이 끝난 후 성니콜라스 교회는 체코슬로바키아의 후스파 교회에 양도 되었다.

여름철이면 이곳에서 음악회가 열린다.

 

프라하의 올드 타운 시계탑 광장이 새로워진다.

 

프라하에 와봤던 사람이라도 다시 올드 타운 광장을 찾을 일이 생길지도 모르겠다.

프라하의 시계탑 건축물로 널리 알려진 올드 타운 홀은 동관 공모전 대한 시안으로

토목, 건축 학부학과의 ​​학생 작품을 7월 18일부터 열리는 학기 전시회에서 공개할 예정이다.

 

이번 공모전의 비전은 프라하의 최대 관광지인 만큼

다이나믹하되 붐비는 인파를 고려하여 지상과 최소한의 접촉을 강조하는 디자인이다.

 

올드 타운 홀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시계탑으로만 구성된 것이 아니라

2차 세계 대전 파괴되었을 때 복원한 시계탑의 중세 건물과 측면의 타운 홀로 구성되어 있다.

타운 홀의 동관은 대부분 네오 고딕 양식으로 설계되었으나

2차 세계 대전 화재로 인해 건물의 외벽만 이 전의 양식을 기초로 복원했다.

 

하지만 20세기에 들어 전체를 대체 복원할 시안을

여러 공모전을 통해 모색해 왔으나 아직까지 수상자 없는 공모전으로 끝이 났다.

이제 현시대의 비전으로 기술 대학의 학부생들이 시티 홀의 빈 광장 동쪽

건물을 도시 문제와 관련해 해결하기 위해 건설적이고 실험적인 공간에 대한 제안을 그들의 학기 과제로 풀어나간다.

 프로젝트의 목적은 역사적인 광장의 전체 공간을 해결하거나 결과적인 건물이나 개체의 양식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환경과 자연의 존재, 올드 타운 광장이 제공하는

뛰어난 여유 공간과 시간에 대하여 감정의 표현으로 긍정적인 현대 건축이 가져올 수 있는 에너지를 찾아 주는 것dl다."

프로젝트 리더 토마스 센베르게르(Tomáš Šenberger)와 다니엘 스미트카(Daniel Smitka)가 말했다.

 

주어진 상태와 같은 맥락을 유지하도록, 몇 해전기존의 공간과 장소에 건물을 서로 연결하기 위해

현대적이고 섬세하되 눈에 거슬리지 않는 방법의 오픈 스페이스로 미학적 순도의 구조와 역학에 중점을 둔다.

하지만 시안이 당선된다 하더라도 꼭 시공된다는 보장은 없다.

 

몇 해 전 이슈가 되었던 별세한 체코가 나은 거장 얀 카플리츠키의

디자인의 프라하 국립 도서관 시공이 백지화 되었던것 처럼 보수적인 체코인들의 성향과 반대 세력의 정치인들이

존재하는 한 새로워진 프라하 올드 타운을 볼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Dancing Building ("일명 춤추는 빌딩")

 

체코 프라하의 구시가지에서 볼타바강변을 끼고 가다보면 프라하성으로 건너는 다리 좌측 모퉁에 "일명 춤추는 빌딩"이 있다.

마치 두남녀가 춤을 추는 컨셉으로 디자인한 건축물인데...

 

구시가지 건축물과 조화는 어떤 시각으로 볼까...~!

우선 층수제한으로 1층은 피로티구조이며...

지상 7층으로 제한하여 주의 고건축물과의 조화를 이루었다.

이 건축물이 미국 L/A에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프렝크 게리( Frank Gehry)작품 춤추는 건축물이다.

건물소유자는 네덜란드의 보험회사인 ING(International  Netherlands  Group) 소유의 건물이다.

 

한쌍의 남녀 구조체 아이디어로 발전된 트윈타워의 이미지는 Gustav Klimt의 작품 The Kiss를 연상시킨다.

 

바로 옆에 있는 바로크풍의 근대 건축물과 오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어 보는 이에게 안정감을 준다.
댄싱 하우스라는 이름이 붙게 된 이유는 트윈타워가 마치 남녀가 춤을 추는 것 같은 형상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벽은 내부벽이며 사무소의 스크린 역할을 하는  조형작인 유리 외부벽이 존재한다.

즉 푸른빛의 강화유리벽은 시각적인 벽으로서 기능하고, 내부벽이 구조체로서의 벽면의 기능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이 건물은 Ginger and Fred라는 이름으로도 불리고 있다.

헐리웃의 인기커플 Fred Astaire와 Ginger Rogers 이름을 딴것이라고 한다.

이 건물은 1996년, TIME에서 최고의 디자인 작품으로 선정하기도 했다.
유럽여행을 가본다면 꼭 보고 싶은 건축물 중 하나이다.

 

해체주의 건축의 교주나 마찬가지인 Frank Owen Gehry는 기존의 틀을 깨는 건축으로 유명하다.
할아버지가 철물점을 운영했던 탓에 어렸을 때부터 고철과 친했었고한다.

그로해 그는 건축에도 철과 알루미늄 구조물을 많이 활용하는 특성이 돋보인다.

 

*해체주의(Deconstructivism)건축이란,

전통적 서양 사상 개념을 비판, 해체하려 하는 해체주의 철학에 기반하여 1988년부터 시작된 건축 경향이다.

형적으로는 비대칭성, 단편성, 탈양식성, 불확실성, 비정형성 등이 특징이있다. 

비유클리드 기하학과 프랙탈 이론의 요소가 나타나기도 한다.

 

 

 

 

교통은  중앙유럽에 위치한 선진지역이기 때문에 철도는 매우 발달했고, 총연장은 1만 3,300㎞이다.

전차·버스 등의 교통기관도 발달되어 있고, 엘베강 등의 하천교통도 중요하다.

또 프라하를 중심으로 내외의 항공로도 발달해 있다.

 

 

 

 

 

체코의 문화는 서유럽의 색채가 가장 짙다.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어 곳곳에 로마네스크·고딕·르네상스·바로크 양식의 건물이 남아 있다

 

프라하는 체코의 수도. 정치·문화·상공업의 중심지로서 역사적인 문화유산도 많다.

1968년 1월 ‘프라하의 봄’으로 부르는 자유화 운동의 역사적 무대였다.

 

 

 

 

 

 

 

 

 

 

 

 

 

 

 

 

 

프라하 바츨라프 하벨 국제공항

 

체코 프라하에 있는 국제공항으로 시내 도심에서 10킬로미터 거리에 있다.

체코 항공허브 공항에 속한다.

체코의 민주화를 이끌었던 극작가 출신 바츨라프 하벨 대통령의 이름을 본떠서 2012년 10월 5일에 개칭하였다.

이전 명칭은 프라하 루지네 국제공항이다.

 

 

241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