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바람....
---새 봄 땅의 기지개...건축물도 영향...
어느새 우수도 경칩도 지났다.
요 며칠 새 갑자기 몰아닥친 꽃샘추위 때문에 봄이 다소 주춤거리고 있긴 하지만, 이제 춘분도 지났다.
이 춘분마저 지나면 봄기운은 더 완연해진 것이다.
오늘이 양력 4월 20일 곡우다.
이때부터 본격적인 농경이 시작된다.
곡우 때쯤이면 봄비가 잘 내리고 백곡이 윤택해진다.
그래서 ‘곡우에 가물면 땅이 석자가 마른다.
즉 그해 농사를 망친다는 말이 있다.
오늘은 봄비가 내리니 올농사는풍년일 것이다.
흔히 봄은 여자들 옷차림에서부터 온다고 하지만, 실제 봄은 땅속에서부터 다가오는 것 같다.
이렇게 날이 풀리게 되면 겨우내 얼어붙었던 땅이 먼저 풀리면서, 지난 한겨울을 힘겹게 견디느라 그동안 잠그고 묶어두었던 새 생명을 온 누리에 다시 풀어 내놓기 때문이다.
이른바 해동(解冬)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원래 풀리면 들뜨게 되고, 들뜨면 문제가 생기게 되어있는 모양이다.
해동을 하면서 땅이 풀리면 우선 그 지표면부터 들뜨게 되는데, 그 들뜬 자리에서 이런저런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그래서 들뜬 땅을 갈아 앉히느라,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일부러 보리밟기를 하기도 하고, 또 축대 밑을 단단히 다져넣기도 하였던 것이다.
건축물도 마찬가지다.
봄이 되어 땅이 기지개를 켜게 되면,
그때마다 땅이 들뜨면서 이리저리 흔들리게 되는데, 그렇게 땅이 해동을 하는 영향범위를 보통 동결심도(凍結深度)라고 한다.
그런데 건축물의 기초가 동결심도 깊이까지 묻혀있지 않을 경우,
건축물이 미세하게나마 조금씩 흔들리면서 그 벽면에 볼썽사나운 균열을 만들어내게 된다.
물론 건축물만 그런 것은 아니다.
담이나 축대, 그리고 기와지붕과 구거 등도 해동의 영향에서 결코 자유롭지는 못하다.
춘분이 지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해동이 시작되면, 세상만물은 그동안 얼고 움츠렸던 제 몸을 추스르느라 여기저기에 그 흔적을 남기게 된다. 기초가 들뜨기도 하고, 또 얌전하게 지붕을 뒤덮고 있는 줄로만 알았던 기와도 그 틈이 벌어지고 깨지면서 빗물이 스며들게 되는 것이다.
주역에도 그와 비슷한 얘기가 있다.
주역은 모두 64괘로 구성되어 있는데, 비로소 풀어 놓는다는 의미의 '해(解)'가 마흔 번째로 배치되어 있다.
그걸 '뇌수해(雷水解)'라고 한다.
이 괘에서는 '풀어 놓는다'는 의미의 괘사(卦辭)가 우선이지만,
오랜 임신기간을 거쳐서 비로소 해산을 하는 단계로, '모든 것이 잘 해결될 테니 걱정할 것이 없다'는 뜻도 아울러 함축하고 있다.
그러한 뜻으로 풀어보면, 겨울이 지나면서 해동(解冬)을 하는 것도 해산(解産)과 마찬가지로, 새로운 생명을 드러내는 중요한 경계가 된다.
그래서 해마다 생명이 다시 싹터 오르는 새봄이 되면, 그동안 풀어놓았던 제 몸을 추스르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느라,
건축물이든 사람이든 이렇게 한 번씩 들뜨고 흔들리게 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봄바람만 탓할 일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