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 이야기/♣-건축이야기

울타리...

이종국 2010. 4. 14. 11:24

울타리...

      -'우리'라는 공동체 상징

 

우리 한국 사람들은 나, 너보다는 '우리'라는 말을 곧잘 사용한다.

우리 집,

우리 식구,

우리 학교,

우리나라라고 해야 뭔가 제대로 말한 것 같고, 심지어 내 남편, 내 아내도 우리 신랑, 우리 각시라고 해야 직성이 풀리는 것 같다.

이렇게 '우리'라고 하는 말은 아주 친숙한 의미로 자리잡게 되었다.

 

그런데 이 '우리'는 건축물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울타리에서 유래된 것으로서,

때로는 그냥 간단하게 '울'이라고도 줄여 불리다가,

어느 때부턴가 우리 사회에서 가장 친근하고 가장 기본적인 공동체의 단위가 된 것이다.

 

그래서 울안에 사는 동식물은 모두 '우리 편'이 되거나 '우리 것'이 되었고, 상대적으로 울 밖을 벗어나게 되면 모두 남으로 여기게 되었다.

 

아마 홍난파가 작곡한 '봉숭아'도 울밑에 서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처량하게 보였는지도 모른다.

만약 울밖에 있었으면 그것이 봉숭아든 장미든 진달래든 애잔한 모습으로 우리민족의 가슴에 와 닿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렇게 우리 건축물에서 울타리는 하나의 경계로서 안팎을 가르는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그 탓이었던지 오랜 세월동안 외국을 떠돌던 송두율 교수도 고국이라고 하는 울안으로 들어오려다가 모진 풍파를 겪은 후,

마침내 '울'이라고 하는 경계에 서서 그 안팎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자신을 스스로 '경계인(境界人)'이라고 정의하기도 하였다.

 

예나 지금이나 우리 한국 사람들에게 있어서 울안은 언제나 따뜻하고 친숙하고 편안한 공간으로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울 밖으로 나서면 왠지 낯설고 살벌하고 불편한 공간으로 인식되곤 하였다.

그래서 그런지 울 밖을 벗어나서도 한때나마 같은 울타리 안에 살았다는 끈을 확인하기 위해서 그렇게 열심히 동문을 찾고,

친척을 찾고, 또 향우회를 찾아다니는 것인지도 모른다.

 

건축물은 그런 것이다.

그저 단순히 잠만 자고, 밥만 먹고, 배설만 하는 그런 공간이 아니라,

건축이 때로는 그렇게 우리의 머릿속에 강인한 의식을 새겨놓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요즘 '열린' 과 '개방'이라는

이 시대의 화두 탓인지 수천 년을 건축의 주요소재로 사용되어 온 울타리(담장)를 경쟁적으로 철거하는 풍경 속에서...

그동안 어려운 고비 때마다 우리를 지켜왔던 그 '우리'라는 고유의 의식마저 허물어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곰곰이 한번 되짚어 볼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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