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건축물/♣------프랑스

베르사유 궁전(Versailles)-파리-프랑스

이종국 2010. 8. 21. 14:14

 

베르사유 궁전(Versailles)-파리-프랑스

 베르사유, 그것은 죄를 낳은 장미밭이다.

 

파리에서 반백 리 남쪽으로 내려가면 베르사유궁전이 나타난다.

파리의 응접실이라고나 할까.

휴일만 되면 파리의 시민들로 성시를 이룬다.

''짐이 곧 국가"라던 루이 14세가 세운 궁전답다.

정말 그 궁정 하나가 바로 한 '나라'와도 맞먹을 것 같다.

 

프랑스식 정원의 걸작인 정원에는 루이 14세의 방에서 서쪽으로 뻗은 기본 축을 중심으로

꽃밭과 울타리, 분수 등이 있어 주위의 자연경관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기본 축을 따라 라톤의 분수, 아폴론의 분수, 십자 모양의 대운하 등을 배치하였다.  

대운하 북쪽 끝에는 이탈리아식 별궁인 그랑트리아농과 프티트리아농이 루이왕조의 장려함과 섬세한 양식으로 세워져 있다.

1979년 유네스코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하였다.

 

아니, 안내원의 말을 빌면 베르사유는 하나의 소우주라고 한다.

물도 없고 흙도 없는 모래밭과 늪 위에다 세운 궁궐이라 그렇다는 것이다.

저 정원과 저 조각과 저 건축과 저 호수는 자연미가 아니라 완벽한 인간의 설계에 의해서 빚어진 인공의 미…

베르사유의 조물주는 인간이기에 또한 그렇다는 것이다.

 

"국민이나 문화나 시대의 성격은 건축에 반영된다"(부르크하르트)는 이론은 베르사유를 두고 환 소리 같다.

프랑스 정원의 전형이라는 그 뜰을 바라보고 있으면 옛날 기하 시간이 생각난다.

 

컴퍼스와 자로 그려놓은 것 같은 대칭도…

균형과 조화와 합리와 질서, 그리고 단정을 추구한 고전주의 정신의 산 교과서이다.

한 바퀴 돌자면 10리가 넘는다는 그 인공 호수도 완전한 직선의 십자형. 자연에 도전한 인공미의 완벽이다.

일사불란, 태양계처럼 베르사유궁을 중심으로 모든 풍경은 돌아가고 있다.

 

화장실에 대한 재미 있는 이야기

 

조선왕조와 동시대의 프랑스 궁전에는 화장실이 없었다.

베르사유 궁전이나 루브르 궁전에서는 WC를 이용할 수 없었다.

그래서 궁궐에 출입하는 사람들은 미리 용변을 봐둬야 했다.

 

하지만 아무리 철저히 '대비'를 한다 해도, 궐 안에서 1시간 이상 머물다 보면 자연스레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

궁궐 출입 경험이 많지 않은 사람이라면, 정신적 긴장 때문에 화장실 생각이 더 많이 날 수도 있다.

 

그래서 프랑스 왕궁에서는, 정원에 배치된 조각상에 몸을 숨기고 볼일을 보는 사람들이 있었다고 한다.

들키지 않기 위해 자신을 조각상처럼 보이고 싶은 사람은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 같은 포즈라도 취해야 했을 것이다.

 프랑스 궁궐에는 화장실이 없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들 중에는

"조선의 궁전에도 화장실이 없었을 것"이라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대궐의 위엄을 지키기 위해 그렇게 했을 것이라고들 말한다.

렇다면 조선의 왕궁에도 과연 화장실이 없었을까?

 

 

 

 

 

 

 

 

 

 

 

 

 

 

푸른 잔디와 가위질도 하지 않는 나무들이 멋대로 자란 잉글리시 가든에 영국인의 그 투박한 마음이 쉬고 있다면...

재단사가 옷감을 마르듯 가위질한 이 깔끔한 수목과

그 뜰엔 명징(明澄)을 좋아하는 프랑스인의 투명한 마음이 다리를 뻗고 있다.

궁전 속에 들어가면 꼭 마술에 걸린 신데렐라 공주가 된다.

한쪽 벽을 완전히 거울로 만들어놓은 갈리 데 글라스는 소문에서 듣던 것보다도 호화롭다.

 

 

 

 

 

 

 

 

 

 

 

 

베르사유궁전 거울의 방

 

거울에방 길이가 70m에 이른다.

주요종부의 행사들이 열린 곳이 었다.

제1차 세계대전을 종식시키는 베르사유조약이 체결된곳이기에 베류사유조약이라 한다

 

실물과 거울속 풍경이 요지경 같은 광경을 펼쳐놓는다.

옛날 이 궁전 사람들도 아마 이 '거울의 방'에서는 현실계와 환상계의 대칭 속에서 살았을 것 같다.

생김새만 그런 것이 아니라 이 방의 역사도 이중적이다.

프랑스가 보불 전쟁에서 졌을 때 프랑스는 이 방에서 굴복의 조인을 했으며,

얼마 후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났을 때에는 승전국의 위치에서 독일과 강화 조약을 맺었다.

그러기에 전쟁과 평화의 방이라고 한다.

궁전의 회랑은 걸어도 무수한 방이 나타난다.

수천의 방마다 초상화들이 옛 추억을 거느리고 눈짓으로 이야기한다.

여기에서 그들은 화장하는 법을 익혔다.

여기에서 노름하는 법을 퍼뜨렸다.

여기에서 그들은 술 마시는 법과 노래를 듣고 연극을 보고 춤추고 사랑하는 풍습을 만들어 냈다.

 
 세계의 향락과 사치가 모두 여기에서 비롯되었다.

베르사유는 미의 바티칸, 사치의 올림피아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이 있다.

더 기억해 두어야 할 만한 일이 있다.

여기에서 그들은 프랑스 대혁명의 불꽃을 펼쳤다.

폭동은 가난한 슬럼가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바로 이곳, 이 화미(華美)와 탕진과 쾌락의 방 속에서 피의 혁명을 낳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