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건축물/♣----이탈리아

로마의 분수-로마를 보여주다

이종국 2011. 3. 11. 12:03

 

로마의 분수, 로마를 보여주다

 

유랑이나 여행에 비해 ‘순례’는 종교적인 목적의 여행이다.

로마는 기독교의 성지이니 예로부터 수많은 순례자들이 몰려온다.

그리고 로마를 찾는 모든 이들은(단순 여행자이든 순례자이든) 광장마다 골목 모퉁이마다,

크고 작은 분수들이 물을 뿜고 있는 모습에 기쁨과 활력을 느낀다.

 

영국의 시인 셸리는 분수에 대해, “로마의 분수를 보는 것은 로마 전체를 보는 것과 똑같다”라고 예찬했다.

이 분수들은 예로부터 로마를 찾아오는 순례자들의 더위를 식혀주고, 또 목을 축여주기도 했다.

 

포폴로 광장과 유서 깊은 캄피돌리오 언덕을 연결하는 비아 델 코르소를 걸어본다.

그러다가 큰 길에서 들리는 소음을 피해 좁은 골목길로 들어선다.

자동차들이 달리는 소리가 차츰 사라지고, 멀리서 물소리가 조금씩 들리기 시작한다.

 

마치 자연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하다. 골목 속으로 더 깊게 빨려 들어가면 물소리는 더욱 더 커진다.

그러다가 갑자기 확 트인 광장이 눈앞에 펼쳐지고 시원한 물소리가 귀에 가득 차오른다.

 

 

 

트레비 분수의 조각. 작곡가 레스피기는 관현악곡 『로마의 분수』에서 트레비 분수의 인상을 음악으로 묘사하고 있다.

 

황갈색의 건물로 둘러싸인 광장의 북쪽 면에는 하얀 대리석 조각들이 무대처럼 펼쳐져 있다.

그 한가운데에는 대양의 신 오케아노스가 두 마리의 말이 이끄는 거대한 조개껍질 모양의 마차에 올라서 있다.

이 두 말을 바다의 신 트리톤이 이끌고 있다.

 

 

 

두 마리의 말은 각각 고요한 바다와 격동의 바다를 상징한다.

오케아노스의 좌우에 있는 조각들은 각각 풍요와 건강을 상징하며, 그 앞에 펼쳐진 넓은 수반은 바다를 상징한다.

 이것이 바로 로마의 후기 바로크시대의 걸작품 트레비 분수이다.

 

이 분수는 1732년, 젊은 건축가 니콜라 살비의 계획안에 따라 착공되어 우여곡절 끝에 1762년에 완성되었다.

오래 전부터 로마를 찾아오는 관광객들은 로마에 다시 오기를 기원하면서 등 뒤로 분수에 동전을 던진다.

트레비 분수를 전체적으로 살펴보면 공간의 구성이 격렬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매끄럽게 깍은 돌 수반이 주는 부드러운 느낌은 거칠고 울퉁불퉁한 바위와 강한 대비를 이루었다.

분수의 물은 작은 폭포가 되어 수반에 흘러내리고,

물소리 속에 부드러운 대리석으로 조각된 바다의 신과 사나운 군마(軍馬)가 하얀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이 광경 뒤에는 수직의 기둥들, 좌우의 조각상,

그리고 육중한 돌림띠를 두른 르네상스 건물의 벽면이 이 격정적인 ‘무대’를 고요히 조율하고 있다.

그리고 흘러내리는 물위에는 한낮의 햇빛이 눈부시게 반사된다.

 

 

 

이런 트레비 분수의 인상을 시로 옮긴 사람이 있다.

그는 이 한 편의 시를 글이 아니라 음악으로 써냈는데, 이런 시를 우리는 ‘교향시’라고 부른다.

이 ‘시인’은 볼로냐 태생 레스피기(O. Respighi 1879~1936)로,

그는 당시 로마 산타 체칠리아 음악원장을 역임하고 있었다.

그의 작품 「한낮의 트레비 분수」(La Fontana di Trevi al meriggio)는 교향시 『로마의 분수』의 세번째 곡이다.

 

비발디가 18세기 초 이탈리아의 기악음악을 최고의 수준으로 끌어올린 사람 중 한 명이라면....

레스피기는 20세기 초 쇠퇴해 가는

이탈리아 오페라 음악을 대신하여 기악음악으로 새로운 장을 연 대표적인 사람 가운데 하나이다.

 

이탈리아는 바로크시대까지만 하더라도 전 유럽의 음악가들이 몰려오던 나라였었다.

19세기 전반에 들어서는 유럽 다른 나라에 비해

기악분야가 크게 뒤져 있었기 때문에 이탈리아의 음악도들은 오히려 이탈리아를 떠나야만 했다.

그 당시 이탈리아는 단지 오페라로 음악문화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때의 열악한 기악음악 상황은 로마에 체류한 적이 있는 베를리오즈의 『회고록』에서도 엿볼 수 있다.

 

 

 

왕의 탄신을 축하하는 미사에 참석했다.

프랑스 대사는 로마의 초일류 합창단, 오케스트라를 초빙하여 미사음악을 담당하게 하였다. 그

런데 오르간 소리는 1/4음 정도 낮은데다가, 소리가 너무 커서 오케스트라 주자들은 각각 엉뚱한 소리를 낸다.

플루트는 D로, 혼은 E플랫으로 연주하는가 하면 다른 악기들도 갈팡질팡한다.

그러다가 이 오르간이 전대미문의 기묘한 피날레를 장식했다.

이런 일들이 문화인들 앞에서 스스럼없이 일어나고 있었다.


이렇게 기악이 뒤처진 이탈리아에 베토벤이 소개되기 시작한 것은 1860년대에 접어들면서부터였다.

다행히 1880년대에는 약속이나 한 듯 레스피기를 이어

피젯티, 말라피에로, 카스텔 누오보테데스코, 잔도나이 등의

음악가들이 태어나 뒤떨어진 기악음악 수준을 이끌어 올리는 데에 온 힘을 쏟았다.

이들을 ‘80년 세대’(Generazione dell’ Ottanta)라고 하는데,

그 중 레스피기는 러시아로 유학을 가서 림스키코르사코프의 가르침을 받는다.

그는 지난날의 영광을 되살리고 이탈리아적인 색채를 찾는 데 열정을 쏟았다.

 

그리하여 탄생한 것이 ‘로마 3부작’, 즉 「로마의 분수」,「로마의 소나무」,「로마의 축제」이다.

그는 음악사의 뒷전으로 밀려버린 이탈리아에 새로운 길을 제시한 선지자와 같은 존재였다.

 

그러나 그의 음악은 화려한 지난날의 영광에 도취되어 있던 이탈리아 사람들에게 생소하게만 들릴 뿐이었다.

선지자의 외침은 자기가 태어난 땅에서는 제대로 들리지 않는 모양이다.

 

나보나 광장(Piazza Navona)

 

로마에서 가장 아름다운 광장으로 피우미 분수로 유명하다.

고대 로마시대에 전차경기장으로 사용되었기 때문에 좁고 길게 뻗은 형태로 되어 있다. 

광장 주변의 건물들은 1세기의 로마 황제 도미티아누스가 세운 도미티아누스 스타디움의 관람석 자리를 토대로 건설되었다.

 

 

광장 일대 건축물의 대표적 양식은 바로크 양식으로

넵튠분수,모로분수, 피우미분수와 주변 건물들이 함께 아름다운 조화를 이룬다.

 광장 중앙에 있는 피우미분수는 베르니니가 디자인했다.

 

피우미분수에 조각되어 있는 4명의 거인은 갠지스강·나일강·도나우강·라플라타강을 나타낸다.

광장 남쪽의 모로분수는 돌고래와 싸우는

이디오피아인의 모습을, 북쪽의 넵튠분수는 넵튠이 문어와 싸우고 있는 모습을 나타낸다.

 

로마에서 가장 아름다운 광장으로 "피우미 분수"로 유명하다.

 

 

 

 

 

 

 

스피인광장 중앙에는 베르니니와 그의 아버지가 설계한 바르카치아 분수가 있다.

물에 반쯤 잠겨 있는 물이 새는 배는 베르니니가 만든 것이다

 바르카치아는 ''쓸모 없는 오래된 배''를 의미한다.